매일신문

가을을 연다-지역중견 예술인 작업현장

햇살이 잦아드니 가을이 멀지 않았네.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가을은 어떤 의미일까. 유례없는 무더위 속에서도 쉼없이 자기단련과 창작에 매진해온 지역 중견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을 찾아 가을준비를 들여다 보는건 어떨까.작가, 화가, 음악가, 무용가, 연극인들의 땀흘리는 현장을 통해 한발 앞서 가을의 청량한 내음을 맡아보기로 했다. 편집자주

지난 16일 오후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 대산초교. 한 더위가 지났다고 하건만, 시골의 한적한 폐교에 내리쬐는 뙤약볕은 여전히 따가웠다. 폐교 한켠에 있는 작가 남춘모(42)씨의 작업실은 뜨거운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교실을 개조한 널찍한 작업실에 들어서자, 숨이 확 막혀왔다. 이마의 땀을 훔쳐가며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 완성을 기다리며 바닥에 널려있는 수십개의 작품들, 흐느적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한대…. 몹시 어지러운 듯한 작업실 풍경은 작품에 파묻혀 사는 작가의 바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할 일은 많은데 작업에 별 진척이 없어 고민스럽네요". 남들은 휴가를 간다지만, 그는 여름내내 잠시 틈을 내기 힘들 정도로 바빴다. 며칠째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작업실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했다.남씨는 요즘 한창 성가를 올리고있는 작가다. 가을에만 규모가 큰 초대전 일정이 두개나 잡혀 있다. 9월 울산 현대예술관 갤러리, 10월 서울 금호미술관에 이어 12월에는 미국 마이애미 아트페어까지 계획돼 있다. 비구상 작가로는 드물게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의 주제는 3년전부터 계속해온 '스트로크(Stroke)'다. 합성수지로 선(線)을 아래 위로 힘차게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붓 대신 공구를 이용, 선을 만들고 틀을 짜는 작업을 한다. 현대 산업사회의 대표적 산물인 합성수지라는 재료로 서정적인 내음과 도회적 미감을 동시에 표현하는 작업이다.

작업중인 그의 작품은 얼마전에 비해 색깔이 한결 맑아졌고, '스트로크'도 훨씬 매끈하게 뻗어 있었다. 현대적 감각에 맞게 세련되고 깔끔한 형태로 나아갔다고 할까. 그는 "올들어 전시회를 너무 자주 갖는게 아닐까 하고 자문할 때가 많다"면서도, "전시회를 통해 작가의 변화하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검증받는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폐교의 한낮은 무척 뜨거웠지만, 가을을 준비하는 그의 열정이 훨씬 더 뜨거운 듯 했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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