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고 緖光 김용대옹을 추도함

우리 고장 교육계의 큰 별이 떨어졌소. '큰 별'이란 말을 고인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지만 고인을 아는 모든 교육동지들이 너무나 존경하던 선배 한분이 가셨음을 섭섭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오.

성경에도 인생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했고, 어느 종교인은 자기 비문에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라고 새겼으며, 이백(李白)은 "천지란 만물이 하룻밤 쉬어가는 여관"이라고 했소. 앞서거니 뒤서거니 새벽하늘 별 지듯이 예고없이 듬성듬성 사라져가는 인생이건만 서광(棲光) 그대의 비보는 너무나 애석하여 섭섭한 마음 금할 길 없소.

그대와 나의 처음 만남은 50년대 중반 시내 공.사립고등학교 재직시 진학 담당자로 서로 협조하면서 시작되었지요. 그 후 서광은 경북고를 비롯, 교위와 동부교육장을 거쳐 드디어 대구직할시 초대 교육감이 됐지요.

그때 나는 시내 모 사립고등학교장으로 있으면서 인사차 교육감실을 찾았다가 서광이 갑자기 "김교장 이럴 것 없이 우리 허교(許交)하고 지내세"라고 제의해 세살이나 연상인 서광과 허교하며 지냈으나 포덕행혜(布德行惠)의 인품에 항상 존경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소.

고인은 실로 관용대덕(寬容大德)한 인격의 소유자였소. 결코 자리에 군림하지 않았으며 교육동료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인의 존귀함을 지켜주곤 했소. 그러므로 늘 따르는 제자들이 많았지요.

나는 시내 모고등학교의 재단에 참여해 왔는데 학원이 곤경에 빠진 일도 있었고, 여러 학교에서도 크고 작은 불상사가 생겨 애로도 있었지요. 그러나 고인은 신상필벌(信賞必罰), 일벌백계(一罰百戒)보다는 어려운 일을 진지하게 협의하고 심혈을 기울여 수습해 주었지요.

6년전에 상배(喪配)하고 노경에 고분지탄(叩盆之歎)의 설움을 겪으며 심신이 허약한데다 두차례나 골절로 오랫동안 신고하신 일들이 너무나 안타깝고 한탄스럽소.치졸한 추도사를 외우(畏友) 서광의 영제에 올리면서 명복을 빕니다.

김문선(대구시 중고교원 서예연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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