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선 막살발 천년의 비밀-日 명기 '이도차완'서민 그릇 아니다

'막사발'. 그것은 이름 그대로 청자도 백자도 아닌 조선시대 서민들이 '막'쓰던 생활잡기(雜器)이다. 그나마 새것일 때는 밥그릇 대접이라도 받지만, 때가 묻고 금이 가면 막걸리잔으로, 더 험해지만 개밥그릇도 된다.

그런 막사발. 16세기 중반 경남 해안지방에서 만들어진 못생기고 투박한 그릇이 일본으로 건너가 '이도차완'(井戶茶碗)으로 불리며 대명물(大名物)로 추앙을 받고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막사발의 평범 속에 묻어나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발견한 일본 차인(茶人)과 무사들의 고매한 심미안 때문일까. 그들은 이도차완의 미학을 종교적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무사들은 차완의 굽 주변과 밑부분의 오돌토돌한 부분(梅花皮)에서 칼의 손잡이와 칼집의 장식 소재(철갑상어 가죽)를 감지했다. 차완의 허리부터 굽 사이의 예리한 휘둘림을 지탱하는 날카로운 각도에서는 단호한 결단과 행동철학을 배웠다. 차완의 표면에 작을 돌이 박혀있는 것에서 인생사가 평탄치만은 않은 것도 읽었다. 풍부한 상상력과 섬세한 미의식이다. 세계적인 동양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悰烈)도 '천하의 명기'라는 헌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이 대명물로 받드는 그릇을 막사발 취급하는 우리는 무엇인가.

천년의 비밀을 간직한 이 조선 막사발의 진실을 추적해온 정동주씨는 '조선 막사발 천년의 비밀'(한길아트)이란 저서에서 이도차완이 서민용 밥그릇이라는 일본인들의 잡기설(雜器說)을 반박하고 나섰다.

저자는 이도차완이 세속의 생활잡기가 아니라 어느 수행자의 기도로 빚어진 만다라. 즉 시·공간을 뛰어넘은 위대한 스승 석가모니의 마음에 닿고자 하는 불멸의 존경심이 빚어낸 불교미술품이란 결론을 내렸다.

흙과 불의 조화로 빚은 신비한 기물 이도차완. 그것을 언제·어디서·누가 만들었는지, 또 누가 언제 일본으로 가져갔는지, 아직도 신비에 싸여있다. 분명한 것은 막사발은 우리가 만들었고, 그 미학은 일본이 꽃피웠다는 것이다. 조선 막사발의 진면목을 복권시키는 일은 이제 우리 몫이 아닐까.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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