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벼슬하기 위한 학문이 아닌 '진정한 학문'에 정진할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자신은 과거 공부를 하고 벼슬을 하느라 진정한 학문을 하지 못해 '아무리 맑은 물로 씻어내도 과거 시험 답안 같은 틀을 벗어날 수 없다'고도 탄식했다. 그는 이 편지에서 또 몽매한 일본이 학문으로 우리나라를 능가하게 된 것은 중국에서 좋은 책을 구입해서 보고, 과거제도가 없어 오히려 '제대로 학문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산의 이 같은 탄식은 지금까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근래에 정부는 실용학문만 장려해서 인문학과 기초과학은 존립 자체마저 흔들리고 있다. 학과 난립을 막고 학문간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대학의 특성을 꾀하고 국제 경쟁력을 기르려는 취지의 '학부제'가 되레 폐해만 낳고 있지 않은가. 인기학과에만 학생들이 몰리는 대학들은 이제 '취업 학원화'하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다산처럼 다양한 학문을 익힌 지식인 배출을 목표로 하는 성균관대식 학부제가 '형식적이지 않으며 일상화되고 정착화 됐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대학가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대 이기준 총장이 지난달 29일 성균관대를 방문, 학부간의 경쟁과 교류를 통해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이 방식을 벤치 마킹하면서 불기 시작한 이 바람은 한완상 교육부총리가 최근 '모범'이라고 부추기면서 불이 붙고 있는 모습이다.
▲성균관대의 학부제는 1996년 12개 대학 76개 학과였던 모집 단위가 4차에 걸친 작업 끝에 올해부터 4대 계열과 4소 계열 8단위로 모집 단위가 축소됐다. 또 각 전공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한은 정원의 120%로 한정, 전공별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지나치지 않도록 했다. 이에 따라 전공 선택의 기회와 학제간 연구 확대, 교육과정의 유연성과 개방성, 학부장 중심의 분권행정 등의 교육 체제를 갖추게 된 셈이다.
▲미국 하버드대 루딘스타인 총장도 '대학의 최선의 교육은 보다 사려 깊고, 보다 탐구적이며, 보다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고 했다. 자신의 전공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 이외에 순수과학(인문학)에 대한 폭넓은 지적 탐구를 유도하는 학문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기초학문의 토대 없이는 학문의 발전도, 국가 경쟁력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차제에 대학 학부제의 올바른 방향이 적극 모색되기를 바란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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