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잊어버려야만 한다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오고 가는 먼 길가에서

인사 없이 헤어진 지금은 누구던가

그 사람으로 잊어버려야만 한다

온 생명은 모두 흘러가는데 있고

흘러가는 한 줄기 속에

나도 또하나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밀려 가야만 한다

눈을 감으면

나와 가까운 어느 자리에

싸리꽃이 마구 핀 잔디밭이 있어

잔디밭에 누워

마지막 하늘을 바라보는 내 그날이 온다

그날이 있어 나는 살고

그날을 위하여 바쳐 온 마지막 내 소리를 생각한다

그날이 오면

잊어버려야만 한다

진정 잊어버려야만 한다

-조병화 '하루만의 위안'

살아가면서 단 하루만이라도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식, 사랑, 우정, 권력, 부 등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그런 것들을 잊어버려야 한다고 소곤대고 있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노래처럼 모든 생명은 흘러가고, 나 또한 작은 비둘기 가슴을 비벼대며 어디론가 밀려가야 하는데 진정 잊지 못할 그 무엇이 있느냐고 우리를 채근하고 있다. 낙엽이 지는 가을날 읽기 좋은 시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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