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농촌공동체 복원을 꿈꾸며

나는 시인들이 농촌 풍경에 기대어 시를 쓰다가 그 풍경에 압도되어 그만 질식해 버리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다.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쓰면서, 제 마음의 농촌 풍경에 익사 당하는 시인들을 얼마나 안타깝게 바라보았던가. 아직도 농촌에는 유장한 삶의 물결이 있다고 믿는가. 유목민의 삶과 역사와 그들만의 문화가 녹아들어 면면이 출렁거리고 있다고 믿는가. 지금도 당신들 그리움의 대상이고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마음의 안식처인가. 태(胎)를 묻은 곳, 늙은 어미가 아직도 배냇저고리를 간직해 두고 있다고 믿는가.

나는 시를 쓰면서 내 삶의 주변 풍경을 예찬하지 못한다. 전통농업은 사라지고 쿠데타처럼 획일적이고 일사분란한 상업영농이 판치는 곳, 농사짓는 일의 즐거움보다 괴로움으로 노래를 거부하고 풍자와 역설이 난무하는 곳, 유장한 삶의 리듬을 유지시켜 온 농촌공동체의 붕괴로 이웃과의 의사 소통마저 차단되어 가는 공간, 엄청난 갈등과 모순이 얽히고 설킨 농촌은 더 이상 전통적인 인식의 잣대를 허용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농민들이 앓고 있는 자폐증과 삶에 대한 무기력이 들녘을 더욱 호전적인 상업영농으로 몰아가는 시대상황은 저 유명한 '플란더즈(플랑드르)'의 초원을 연상시킨다. 양모의 자체 생산보다 영국 모직물의 수입으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했던 약아빠진 상인들로 인해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된 플란더즈는 '생산'의 포기가 재앙으로 가는 교훈이다

농사짓는 일의 위대함과 즐거움은 복원될 수 없을까. 정녕 그것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가버린 것인가. 무엇이 이 땅의 농업·농민·농촌의 삶과 역사와 문화를 소멸시켜 가는지는 정확하게 진단되었는데 처방전을 내놓지 않으니 이게 큰 일이다.

시인·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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