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이즈미 방한 수용배경

정부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방한을 수락함으로써 역사 교과서 왜곡,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등으로 경색, 악화된 한일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그러나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한 성의있는 조치가 없는 한 정상회담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정부가 전제조건 충족없이 일본 총리의 방한을 수락한 것은 '원칙없는 외교'라는 점에서 야당은 물론 여론으로부터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정상회담 수락 배경=정부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 및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이 문제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강경 방침을 천명해 왔다.

특히 청와대 고위 당국자는 우리정부의 왜곡 역사교과서 재수정 요구를 일본정부가 사실상 거부하자 "일본은 두고두고 이번 일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시간만 지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그것은 착각"이라며 외교적으로는 부적절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강도높은 단어까지 구사하며 일본을 비난했었다.

그러던 정부가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은 한일관계를 이대로 끌고 가서는 여러모로 도움이 안된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야 어찌됐든 경솔한 발언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미국의 테러사태로 세계경제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우리경제의 활력 회복을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절실히 필요하고 내년 월드컵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도 일본과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같은 당장의 문제 이외에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도 한일 양국의 통상·투자, 문화·인적교류 등 어러분야에서의 협력을 지체시키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도 한 것 같다.

▲일본의 성의표시 수준=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최대의 관심은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해 고이즈미 총리가 어떤 수준의 가시적 조치를 내놓느냐이다.

정부 당국자는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등) 현안에 대해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한국에 와서 직접 밝히게 될 것이며 그의 방한은 문제의 종료가 아니라 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해 다소'진전된 입장'을 표명할 것임을 시사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고이즈미 총리는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진전된 입장을 표명하고 싶다는 뜻을 외교경로를 통해 수차례 전달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실제로 건질 것은 별로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왜곡 역사교과서는 합법적 제도에 의해 검정이 통과됐음을 누누이 강조해왔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에 대해서도 고이즈미 총리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지난 1995년 무라야마 도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의 담화와 98년 합의한 '21세기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수준 이상의 구체적이고 성의있는 조치를 내놓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이만섭 국회의장도 4일 "그동안 한일 양국간에 맺힌 문제를 풀려고 하는 성의표시가 선행돼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고 한나라당도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국민정서를 무시한 채 갑자기 방한을 수락한데 대해 상세히 해명하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이같은 점에서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또 다른 마찰의 불씨가 될 소지도 안고 있으며 이같은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우리 정부는 더욱 곤혹스런 처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정경훈기자 jgh031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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