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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 쌀수매 포기 '직판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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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2시쯤 안동시 운안동 한 아파트에 허름한 농부 차림의 40대 부부가 찾아 와 초인종을 눌렀다. 집 주인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한참 주저하던 그들은 『쌀 좀 사세요. 금방 찧은 쌀이라서 밥맛이 참 좋습니다』라고 겨우 말했다.

안동시 안막동에서 3천여평의 논농사를 짓고 있는 이들 부부처럼 농민들 피말리는 벼 수매를 포기하고 마을 정미소에서 벼를 찧은 뒤 아예 시내 주택가를 찾아 나서는 「쌀장수」농민들이 안동 지역만 해도 10여명에 이른다.

올 가을 정부 추곡 수매량과 농협 RPC(미곡처리장) 수매가에 낙심한 농민들이 궁여지책으로 이제 직접 소비자들을 찾아 나서는 기막힌 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

40kg들이 벼 한가마에 5만6천원선은 받아야 하나 농협 RPC측이 현재 4만7, 8천원선을 제시하며 수매에 난색을 보이고 있어 이제 자식 교육비라도 건지려면 직접 벼를 찧어 소비자들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이 농심(農心)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WTO 체제에서 추곡 수매에 한계가 있는 정부만 처다보고 있다가는 쪽박차기 십상이지요. 쌀 소비촉진 운동이야 잠시잠깐 농민 달래기지, 어디 근본적인 쌀 문제를 풀어 낼 수 있겠습니까.』

한때 전국 쌀증산왕에 선정된 권세원(51·안동시 일직면 구천리)씨는 『정부 비축분 제고미가 창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쌀 소비마저 줄어 든 상황에 한정된 추곡수매 물량과 만성 적자난에 허덕이고 있는 농협 RPC만 믿고 마냥 앉아 있을 수만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양곡정책에 반문을 거듭하고 『앞으로 벼농사를 계속하려면 일찌감치 가까운 곳에 단골 소비자들을 미리 확보해 두는 게 상책』이라고 말했다.

이 바람에 시내 쌀가게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쌀소비 위축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농민들이 이번 추곡 수매를 하고 남은 쌀을 직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

쌀 소매상들은 단골 고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광고 전단을 만들어 주택가 집집마다 배포하는 등 풍년 가을에 농민과 소매상 사이에 때아닌 쌀 판매전이 한바탕 벌어지고 있다.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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