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어머니, 당신께서 다시 나에게 오십니다.

어디서든 가슴을 열어 마른 목을 적셔 주고

어디서든 자궁을 열어 나를 쉬게 합니다.

내게는 아직도 서른 다섯인 어머니

가물거리는 당신 얼굴 못 알아볼까 봐

마음으로 가슴으로 이렇게 내게 오십니다.

아픈 머리에 손을 얹어 주시고

힘들게 산 인생 등 두드려 주시며

그래도 꿈 버리지 않고 살았구나 쓰다듬어 주십니다.

어머니, 당신께서 다시 나에게 오십니다.

그 먼 곳, 그 나라에선 건강하시지요.

지금 내 곁에 와 있는 당신의 모습 보면 알아요.

친구처럼 동생처럼 연인처럼

나에게 생명과 사랑과 그리움을 가르치는

당신의 손길이 따뜻한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나도 친구처럼 누나처럼 연인처럼 더러

함께 술도 한 잔 하고요 응석도 부리고요

서른 아홉 까실한 수염으로 젖무덤도 부비고 싶어요.

-안상학 '어머니'

'어머니'는 아마 우리 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이고 '사모곡'은 가장 흔한 주제일 것이다. 그만큼 '어머니'라는 말에는 원초적 슬픔이 배어 있는 지 모른다. 더욱이 망자인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그리움은 더욱 절절할 것이다.

이 시도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슬픔이 배어 있다. 서른 다섯에 고인이 된 어머니보다 이제 나이가 더 들어 서른 아홉이 된 시인이 까실한 수염으로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고 싶은 이 애절한 마음을 어머니는 하늘나라에서 차마 알고나 계실까?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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