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의 개혁이 그러하더니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도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이제 개혁이라는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엄청 늘어나 버렸다. 개혁이 시대적 사명이라는 엄연한 객관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개혁 피로 현상들이 만연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개혁 주체의 형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개혁을 이끌어 가야 할 사람들을 한낱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정권과 관료집단의 도덕적 오만과 조급함이 개혁의 지지 기반을 스스로 허물어뜨린 결과이다. 자신들이 추진하는 개혁이 옳은 일이라는 믿음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방법이 잘못 되거나 속도 조절이 적정하지 못하면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옳은 일일수록 나 홀로 추진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옳은 일이기에 그 일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을 아울러 개혁 추진의 주체 세력을 형성해야만 개혁은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교육 개혁의 실패가 좋은 예이다. 교사들을 싸잡아 개혁의 대상, 아니 나아가서는 개혁의 적으로 매도하고서 도대체 누구를 통해, 누구와 함께 교육 개혁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몇 년 전 '우리 학교는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입간판을 학교 정문에 세우게 한 적이 있다. 참으로 한심한 관료적 발상이다. 이런 짓거리는 오히려 교사 사회의 자정 노력에 오물을 끼얹을 따름이다. 이따위 입간판으로 교사들의 자존심에 치명상을 입히게 되면 그 동안 자정 노력을 해오던 개혁적 교사들은 순식간에 교사 사회의 배신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한순간에 촌지 교사들이 오히려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게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게 된다.
최근에 떠들썩한 교사 성과급 제도나 중등 교사의 초등 교사 임용 시도 등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의 성과 측정이 불가능한 현실을 무시하고 관료적 잣대로 재단된 성과급 지급을 강행하는 상황에서 그 동안 교사 사회의 안일함에 내부적으로 경종을 울려오던 개혁적 교사들이 과연 설 땅을 찾을 수 있겠는가? 성과급 제도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교사들을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힌 반개혁적인 무사안일주의자로 매도하는 태도는 교육 관료들의 도덕적 오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이다. 별로 도덕적이지도 못한 자들의 오만이고 보면 이건 완전히 적반하장격이다.
초·중등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를 35명으로 줄이겠다는 정책에는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35명으로도 오히려 성에 차지 않는다. 장차는 25명 수준까지 내려가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책 목적의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도 모두 동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등 교사 자격증 소지자들을 일정 기간 보수 교육을 거쳐 초등 교사로 발령하는 편법까지 동원해 가면서 반드시 2003년까지 모든 학교에 35명 학급을 일률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 교사의 전문성을 훼손하고 그들의 자존심과 긍지를 휴지통에 쑤셔박으려는 데 어떤 교사들이 여기에 동의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산술적 개혁 목표의 달성에 무비판적으로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을 과연 반개혁적인 교사들로 낙인찍을 수 있을 것인가?우리 사회가 총체적 개혁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개혁이 어느 특정 정권이나 특정 집단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물론 반개혁적인 세력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정 방식의 개혁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반개혁적인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는 각 분야마다 개혁을 갈망하고 또 이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의 입지를 넓혀주고 이들이 자기 분야 개혁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영남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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