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디어는 내친구-VRT활용

◈TV프로 녹화 권해보자

◇학교 수업 활용 풍경=대구 관음초교 5학년3반 김칠순 교사는 지난주 자연 시간에 VTR을 활용해 봤다. 이 학급 최성현군이 일요일 KBS에 방영된 화성 탐사 프로그램을 녹화해온 것을 함께 본 뒤 '태양의 가족' 단원 수업을 진행한 것.

'화성에 생물체가 과연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던지자 학생들 사이에 '있다' '없다'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교과서에 나오는 설명이나 단순한 그림만 보고는 나올 수 없는 얘기들이 쏟아졌다. 녹화된 방송 프로그램을 본 덕분이다.

김 교사는 이미 앞선 사회 시간에도 이 방법을 써서 수업 효과를 상당히 높였다고 했다. 고려시대 문화를 내용으로 하는 수업이 있기 전에 학생들에게 관련된 프로그램을 녹화해 보라고 시켰더니 한 학생이 마침 KBS에서 방영한 '역사스페셜'을 녹화해왔다는 것. "함께 본 뒤 토론을 시켰더니 교과서 내용을 훨씬 뛰어넘는 이해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재미 있어 하는 건 물론이고요".

몇 주 동안 이런 방법을 사용한 덕에 학생들의 VTR 사용 능력도 조금은 늘었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다시 조사해 보니 학급 39명의 학생 가운데 12명만이 녹화할 줄 안다고 답했다. 18명은 집에 VTR이 없거나 녹화 기능이 고장났다고 했다.

이어진 수업. 김 교사는 이날 신문에 난 TV 편성표를 복사해 나눠주고 모둠별.개인별로 녹화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고르도록 했다. 만화영화나 게임 프로그램을 늘상 보는 학생들이지만 어떤 프로그램이 녹화할 만한 것인지는 분명 알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재미 있는 동물의 세계' '인간극장' 등. 한 모둠에서는 '퇴계 탄신 500주년 특집 다큐'를 녹화하겠다고 해 칭찬받기도 했다. 이날 과제는 고른 프로그램을 직접 녹화해서 보고 프로그램의 내용을 평가해 오는 것이었다.

◇집에 있는 VTR 기능 살리기=녹화용 공 테이프를 몇 개 쯤 집에 마련해두는 건 기본. 녹화 기능이 제대로 되는지 부모가 먼저 점검해보고, 문제가 있다면 수리하거나 A/S센터에 기능, 문제점, 활용법 등을 물어보면 된다. 자녀들에게 녹화 방법을 알려준 뒤 가족이 볼 만한 프로그램을 녹화하라고 권해 보면 의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고 김 교사는 귀띔했다. "자기가 프로그램을 고르고 녹화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데 대해 어린이들은 상당한 자부심을 가집니다. 어떤 게 좋은 프로그램인지, 나쁜 프로그램인지 고민해 보는 계기도 되고요".

신문이나 방송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오는 TV 편성표를 활용하면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녹화한 프로그램이 쌓여 가면 테이프 겉면에 프로그램 내용과 방영일자 등을 기록하게 하고 차곡차곡 모으는 습관을 들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 공 테이프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으므로 적은 부담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녹화 목록을 스스로 정리해보게 하면 금상첨화. 어떤 이유로 이 프로그램을 녹화했고 어떻게 활용했는지,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등을 기록하게 하는 것이다.

한달에 하루 이틀 쯤 자녀가 녹화한 프로그램을 가족이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면 마치 TV 프로듀서나 프로그램 편성자처럼 의젓해진 자녀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TV나 비디오 테이프를 보는 데 정신 없이 빠져드는 모습을 훨씬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디오 대여점에 들러 만화영화 테이프 1개 들고 들어오면 돌려줄 때까지 다섯번이고 열번이고 되감아 본다. 아버지도 테이프 두세 개 빌려 와서는 토요일 밤, 일요일 낮 쉴새 없이 VTR은 돌아간다. 아이들 말대로 VTR은 고장날 때까지 '재생과 되감기'만 반복하는 기계인 것리모컨에 있는 '녹화'나 '예약녹화' 단추 사용법만 알면 좋은 TV 프로그램을 녹화할 수 있는데도 그나마 생각을 못한다. "그 프로그램은 꼭 봤어야 하는데" 안타까워 하기 일쑤. 어쩌다 녹화를 한 번 해볼라치면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 선이 잘못 연결됐나? 고장이라도 났나? 이리저리 만져보다 포기하고 만다.

요즘은 대부분 가정에 VTR이 있다. 그러나 대여점에서 영화 테이프를 빌려보거나, 아이들을 위한 학습용 테이프를 사서 보는 걸로 활용이 끝난다. 좋은 프로그램을 녹화해뒀다고 가족들이 두고두고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무리 다양한 기능을 가진 VTR이라 해도 그저 '재생기' 역할에 머물고 마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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