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주방을 바꾸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난 이번만큼은 그이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이의 당당한 어깨를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작년 선보였던 대우자동차 매그너스 TV광고다. 드라마 허준의 인기에 힘입어 모델로 나온 황수정씨가 주부들에게 남편의 자신감을 세워주라며 설득하고 나섰다. 남편의 당당한 모습이 보고 싶었고, 그것이 곧 자신의 행복이라는 공식이었다. 부엌을 새로 꾸미는 대신 남편의 차를 바꿔 남편의 기를 살린다는 내용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며 아이들의 아버지인 남편. 얼마전까지만 해도 굳이 광고를 내세워 기살리기를 할 필요가 없을 만큼 권위의 상징이었다. 그 존재 자체가 집안의 버팀목이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눈빛만으로도 그 뜻을 따랐다. 하지만 요즘도 그랬다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요즘 남편, 요즘 아버지는 힘들다. 그만큼 외롭다. 구조조정이란 이야기가 새로 등장하고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30~40대 가장들은 직장에서 한창 일해야 할 세대. 아이들과 가정을 위해 뭔가를 해야지 하면서도 생각만으로 그쳐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렇다고 퇴근하면 편안해지는 것도 아니다. 아내와 아이들 중심의 울타리가 이미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집안에서도 외톨이다. 가장으로서의 명예보다 의무와 역할만 늘어났다. 예전과 달리 목소리가 커진 아내,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 틈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형편없이 쪼그라들기만 한다.
이런 아버지, 남편들을 위한 자리찾기가 필요한 때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도 살기 때문이다. 가족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가장은 힘이 난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는 가장을 위해 아내와 자녀들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을까?
대구시 북구 구암동에 사는 주부 김경순(37)씨. 김씨는 남편이 가끔씩 힘겨워 할 때마다 "위만 보지 말고 아래도 보고 살자"고 권한다. 모든 일이 잘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난 당신을 믿어요"라는 한 마디로 남편의 용기를 북돋운다. 10년간의 샐러리맨 생활을 청산하고 작년에 소규모 자영업에 나선 이재수(38.대구시 달서구 대곡동)씨는 늘 아내에게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 아내가 수시로 가족회의를 열어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기 때문이다. 특히 집안 대소사 뿐 아니라 자녀교육 문제까지 의논하며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준다. 때때로 "요즘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 없어요"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늘 밤 12시가 돼야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 그런 남편의 퇴근시간이 어느날 갑자기 빨라졌다면 좋아하기 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필요할 때다. 체력이 달려 2차도 감당하기 어려울 때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남편들은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마음속으론 울고 있다. 보약이라면 무슨 소리 하느냐며 펄쩍 뛰던 남편이 개소주를 찾을 때쯤 남편에게 작은 일이라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건네 보자.
회사원 정모(40)씨는 가끔 퇴근 전 e메일을 열어보고 새로운 힘을 얻는다. 아내가 보내온 e메일엔 아주 작은 일에도 늘"고맙다"는 말로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남자도 단순하잖아요. 그런 표현을 한번씩 들을 때마다 아내가 날 인정해주는구나 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아무리 힘없는 남편이라도 아내에게서만큼은 최고의 남자가 되고싶어한다. 어떤 일이든 남편의 입장에서, 남편의 편이 되어보자.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는 아내가, 아이들이 도와줄 때 가능한 일 아닐까.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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