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헌영 세상읽기-민주당의 선택

보궐선거 후 민주당이 연출하는 일련의 드라마는 '과연 집권당인가'하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맹성하며 다시 태어나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대동단합의 모습이 아니라 파장을 맞아 각자 도생(圖生)하려는 계보와 각개전투 태세에 돌입하는 혼전의 양상이다.

분명한 것은 당장 모든 당원이 탄탄하게 일치 단합해도 2002년도의 각종 선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미지수인 판국에 지금과 같은 분열의 조짐이 지속된다면 이번 보선에서의 패배에 못지 않는 참패와 그에 부수되는 파국을 맞을 것이란 사실이다.

민주당이 겪고 있는 오늘의 '지도부 부재' 현상은 아마 이번 보선에서 승리했더라도 어차피 한 번은 치러야 할 피할 수 없는 '대통령 후보'를 위한 전초전에 해당될 것이다. 자격을 갖춘 인재가 민주당에만 몰려있는지, 아니면 위로부터의 낙점을 기다리는 요행수 때문인지는 모르나,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노라면 유자격자가 그리 많지도 않아 보이는데도 왜들 그렇게 김칫국 값만 올리는지 모르겠다. 자신에 대한 냉혹한 평가도 못 내리는 판이니 어찌 당인들 평온하겠는가.

집권 후 누적된 민심 이탈은 지난 총선 직후, 그리고 자민련의 이탈 후 심기일전하여 재출발했어야 되었던 전환의 계기가 있었건만 무슨 속셈인지 어물쩍 그냥 넘어갔고, 그 결과가 이번 보선인데도 역시 별 개혁의 조짐이 안 보이는 건 아직도 이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는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위기다. 위기인데도 그 처방은 뒷전이고 '대통령 후보자'들의 조바심만 부추기고 있다. 마치 후보자로만 뽑히면 대권을 장악하기라도 하듯이 당내의 기본질서나 원칙도 아랑 곳 없이 자신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자 모든 정책을 몰아가는 것 역시 위기의식을 부채질 하고 있다.

왜 이 지경일까. 한 마디로 '참된 개혁'의 실패에서 위기는 비롯됐다. 개혁은 주장하면서 요직에는 비(반)개혁적인 인사들로 메웠고, 구호는 개혁인데 알맹이는 비개혁이었다. 정책에 실패한 인사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요직에 재기용되는 기현상도 있었다. 무슨 계나 파의 문제가 아니라 개혁 지향성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중요할 따름이다. 애정 어린 충고를 수렴, 반성하기보다는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풍조는 군부독재 시절과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개혁 이외에 달리 길이 있을까? '국민의 정부'는 집권 초기에 지역 감정의 극복과 중산층 설득을 위하여 '개혁' 보다는 '현상 유지'와 '점진주의'를 선택했다. 그러나 분명해진 것은 민주당 반대 정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지층의 확산을 위해 상류층의 눈치만 보다가 실종된 것은 개혁과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세력의 애정이다. 섭섭하겠지만 민주당은 상류층으로부터 애정을 받겠다는 야망을 버리는데서 새출발 해야 할 것이다. 상류층이 민주당을 지지하기란 이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만큼 어려울 터인데 여전히 그런 기대를 갖고 '개혁'의 깃발을 하나씩 내리는 처사는 자신의 묘혈을 파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물며 개혁이야말로 민족 생존권의 확보를 위한 절박한 과제이거늘 왜 이를 외면하여 역사를 거스르며 당의 지지 기반까지 허물어 버릴까.

민주당의 진로는 저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으로 회귀하는 것뿐이다. 불과 집권 4년만에 그 어려웠던 시절의 이상을 망각했다면 차라리 집권 않았음만 못하다. 행여라도 대북 정책의 전환으로 비아그라같은 특수 효과를 기대하지는 말기를 간곡히 바라는 까닭은 도리어 역효과로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가지 비법은 경제적인 호황인데, 이것 역시 기대할만한 것이 못되고 보면 역시 기댈 곳이라곤 '개혁'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도 여전히 개혁은 뒷전이고 당권이니 대통령 후보니 하고 다툴 것인가.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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