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87년 홍콩 여간첩 피살사건 남편 자작극

검찰이 지난 87년 '홍콩 여간첩 수지김(본명 김옥분·당시 34세) 피살사건'과 관련, 당초 북한측에 의해 납치됐던 것으로 알려진 뒤 홍콩 자택에서 피살체로 발견된 김씨가남편 윤모(43)씨에 의해 살해됐다고 결론짓고 윤씨를 살인 등 혐의로 전격 구속기소했다.서울지검 외사부(박영렬 부장검사)는 13일 수사결과 브리핑을 통해 윤씨가 부부간 성격차와 돈 문제 등으로 말다툼을 벌이다 김씨를 살해한 뒤 범행을 감추기 위해 사체를유기하고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을 거쳐 자진 월북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씨는 자신의 폭행치사 혐의만 부분적으로 시인한 채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도 살인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직접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한 상태여서 향후 살인죄 적용을 둘러싼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윤씨는 김씨와 말다툼을 벌이면서 폭행하던 중 김씨가 실신하자 '죽은 것 같아 순간적으로 겁이 나서 목을 조르게 됐다'며 살인이 아닌 폭행치사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고 검찰은 전했다.사건 당시 부인 김씨가 북한 공작원으로서 남편을 납북하려 했다는 당시 안기부 발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검찰이 초기수사 과정에서의 사건 축소·은폐 의혹에 대해 국정원에 수사자료를 요청하는 등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검찰에 따르면 윤씨는 평소 부인의 전력이나 성격차, 돈 문제 등으로 잦은 말다툼을 벌여오던 중 87년 1월3일 0시20분께 부인 김씨의 홍콩 소재 아파트 침실에서둔기로 김씨의 이마를 때려 실신시킨 뒤 현장에 있던 여행용 트렁크 가방을 묶는 캔버스 끈으로 김씨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다.

윤씨는 김씨의 사체를 침대 밑에 숨기고 싱가포르로 도주, 북한대사관을 찾아가 자진 월북하려다 실패했다는 것.윤씨는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김씨가 사건 발생 당시 홍콩에서 조총련계로 보이는 일본인 2명에 의해 납치된 뒤 나도 북한대사관에 납치됐다 겨우 빠져나왔다'고 주장했다.

안기부 등 공안당국은 87년 1월9일 귀국한 윤씨를 상대로 3개월 가량 조사를 벌인 뒤 부인 김씨가 북한 공작원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김씨를 이용해 남편 윤씨를 납치하려 한 '납북 미수극'으로 발표했다.

검찰은 지난해 3월 김씨 가족들의 고소로 재수사에 착수, 홍콩 경찰의 수사 결과 등을 토대로 사건 발생 14년 10개월여만에, 살인 혐의 공소시효(15년)를 불과 두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윤씨를 법정에 세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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