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보시오 벗님네들 이내소리 들어보소(49)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운반구가 지게이다. 지게는 사람의 힘으로 짐을 가장 많이 운반할 수 있는 연모로서 우리 민족의 우수한 발명품으로 평가된다. 요즘 등산용 배낭도 종래의 자루형보다 지게의 원리를 이용한 형태로 가고 있다. 지게가 아무리 훌륭한 운반구라 하여도 비석이나 아름드리 기둥처럼 지나치게 무거운 것은 져 나를 수 없다. 어디까지나 일인용 운반구이기 때문이다. 무거운 바위나 비석, 목재 등을 운반할 때에는 '목도'를 한다. 비석이나 목재 밑으로 밧줄을 넣어 감은 뒤에 고리를 길게 만들고 튼튼한 장대를 꽂은 뒤에 좌우 두 사람씩 이 장대를 목 뒤 어깨 위에 가로로 얹어서 힘을 받치는 까닭에 상당한 요령을 갖춘 힘꾼들이 아니면 목도를 할 수 없다. 따라서 힘깨나 쓴다고 아무나 목도꾼 노릇 하다가는 일도 그르치고 몸도 다친다. 요즘 야당이 수의 우세를 믿고 함부로 힘자랑을 하는 것 같다. 교원정년 법안을 되돌리고 개혁법안을 뒤집고자 무리를 한다. 전문 목도꾼들이 짐을 옮기면서 얼마나 조심하고 사려 깊게 행동하는가, 목도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발을/ 어여차

맞추고/ 어여차

땡기라/ 어여차

뒤는/ 어여차

밀고/ 어여차

앞은/ 어여차

땡기고/ 어여차

경남 산청군 김중희 어른의 목도소리이다. '어허차/ 어여차' 가락이 가볍다. 무거운 짐을 지고 한 발씩 떼 놓기 알맞도록 후렴구가 경쾌하다. 앞소리꾼은 목도 요령을 지시하는 말로 매김소리를 한다. '발을 맞추고 뒤를 조심해라', 또는 '뒤는 밀고 앞은 당기라'고 한다. 역시 길게 소리를 매기지 않고 두세 음절로 가볍게 앞소리를 한다. '발이 틀리면 큰일난다'는 주의도 놓치지 않는다.

"일 자도 모르는 건 판무식이라

촌놈에 딸이면 쌍놈에 딸이라

청춘에 늙노나 차정!"

우여차/ 디여차

한 발재죽/ 으여차

까딱거리먼/ 으여차

다 죽는다/ 어그여차

전북 무주 사는 정진상 할아버지 소리이다. 목도를 하기 전에, 이야기투로 목도꾼의 처지를 탄식처럼 내뱉기도 한다. 한 자도 모르는 전무식꾼이라 자처하며 촌놈의 딸이 곧 상놈의 딸이듯이 목도를 매는 자신들도 더 볼 것 없는 상놈이라 인식하다. 그러니 양반 선비들과 달리 무식한 상놈들은 목도질처럼 힘든 일을 하느라 청춘에 다 늙는다고 한다.

'차정!'이란 말은 목도를 일제히 메고 일어서도록 하는 구호이다. 같은 순간에 일제히 힘을 주지 않으면 무거운 비석을 들 수도 없으려니와 자칫 허리를 다칠 수도 있다. 발을 옮길 때도 함께 조심해서 옮겨야 힘의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순조롭게 운반할 수 있다. 한 발자국이라도 까딱 잘못 하면 다 죽는다. 공연한 엄살이나 위협이 아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가 누구 하나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거나 장대를 놓치게 되면 여러 사람이 거대한 비석이나 나무기둥에 깔려 참화를 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목도소리는 사실 목도꾼들의 흥을 부추기는 신명의 소리라기보다 안전을 지켜주는 생명의 소리라 할 수 있다.

니 먼저 올라라

니 받아 줄거나

내 먼저 오를까

니 받아 줄라나

어데다 놓을꼬

이 쪽에 놓을까

저쪽에 놓을까

진양 사는 옥기봉 할아버지 소리이다. 평지를 가다가 높은 산으로 오를 때에는 누가 먼저 오를 것인가, 누가 받아 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따진다. 무거운 짐을 나를 때일수록 여러 사람의 협조와 도움, 그리고 대화가 필요하다. 목도소리 사설만 보면 노래가 아니라 목도꾼들의 대화록이자 일의 요령에 대한 지시사항이며 작업과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운반한 짐을 내려놓을 때에도 여기 놓을까 저기 놓을까 사려 깊게 생각한다. 판단을 잘못하여 엉뚱한데 내려놓으면 다시 들어 옮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고 추어 어깨야

어깨 아퍼 죽겠다

아이구 허리야 배가 고퍼

아이구 허리야 못하겠다

강릉 사람 최재순 할아버지 소리이다. 목도작업 일지에는 목도꾼의 고통이 기록될 수밖에 없다. 서까래 같은 장대를 목 뒤쪽으로 좌우 어깨 위에 가로로 얹고 무거운 짐을 들어올려 운반하려면 우선 어깨가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뱃힘이 있어야 허리를 펴서 목도를 할 수 있는데, 배가 고프면 힘도 못쓰고 허리가 접혀도 펼 수가 없다. '아이고 허리야 배가 고파 못하겠다'는 소리가 절로 난다.

앞을 보고 잘 가자

우리 사명 목도꾼이

너 하나 잘못 하면

사명이 다아 간다

허리를 피고 오굼지를 말고

상주 사는 이선우 어른 소리이다. 발걸음이 흔들리는 목도꾼에게 채근을 한다. 너 하나 잘못 하면 목도하는 네 사람이 다 간다는 것이다. 크고 무거운 비석은 여섯이서 목도하지만 그리 크지 않은 망두석은 넷이서 목도를 한다. 그러니 목도꾼들끼리 손발이 척척 맞고 호흡이 일치하지 않으면 운반은커녕 들지도 못한다. 나 하나 편하자고 꾀를 부리다가는 넷 또는 여섯이 일시에 죽는 수가 있다. 그러나 워낙 무거운 터라 마음먹은 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앞소리꾼은 연신 작업방법을 알린다. 발밑을 내려다보지 말고 앞을 보며 몸의 균형을 잡으라고 하는가 하면 오금을 펴지 말고 허리를 펴라고 한다. 산길에서 앞을 보지 않으면 발도 헛딛게 되고 몸의 균형도 맞추기 어렵다. 무릎은 어느 정도 굽혀서 유연성을 확보하되 허리는 펴야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다. 목도꾼들에게는 정말 긴요한 소리이다.

같이 이 돌 한 덩이 가지고

쥔네 좋은대로 하자

허라여차 이눔들아 조심해라.

이것이 하나 탈이 나고 다치만

국가에 손해라 조심조심하자

예천 사는 우두성 할아버지 소리이다. 목도꾼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돌을 운반하는데 누구를 위해서 할 것인가. 목도꾼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라, 주인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히 주인 좋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목도꾼이 다쳐서도 안 되고 운반하는 돌에 흠이 나도 안 된다. 어느 것 하나라도 탈이 나면 나라에 손해다. 목도꾼들이 무거운 돌을 나르면서도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고 주인 처지에서 생각하며 나라 생각까지 하는데, 정작 국회에서 나라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뭐든지 힘으로 몰아붙이려 드는 걸 보면 진짜 힘깨나 쓰는 목도꾼들보다 못한 것 같다.

여당의 반대 아래 교원정년연장법안을 기어코 통과시키려는 야당을 보면, 도대체 이들이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이같이 엄청난 일을 무리하게 하는지 알 수 없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학생들 다수도 반대하고, 학부모들 다수도 반대하는 교원정년 연장을 여당의 강력한 반대와 대통령의 거부권까지 거론되는 지점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은 결국 자기들 좋자고 하는 힘자랑일 뿐이다. 교원정년 연장이 수의 우위를 과시하고 야당의 힘자랑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제부터는 국민들이 다수의 힘을 과시하고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의원 몇 석 더 확보했다고 벌써부터 민심을 저버리고 제멋대로 한다면, 만일 다음에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거나 정권이 교체되기라도 한다면 어떤 횡포를 부릴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국민들의 지지와 함께 가지 않는 힘자랑은 무거운 짐을 지고 산길에서 발을 헛딛는 일이나 다름없다. 까딱 잘못하면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당이 죽고 교육도 죽으며 나라까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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