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총리표창 금산삼계탕 김창민 사장

김창민(42)씨는 수성구 들안길에 자리잡은 금산 삼계탕집 사장이다. 짧게 깎은 머리모양 탓에 사진 속의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영락없는 '조폭'인상이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동생도 좀 밀어주십시오. 동생 잘 생겼어요, 형보다'. 라고 외쳐되는 라디오 삼계탕 광고의 그 '덜 잘 생긴 형'이 바로 김창민씨다.김씨는 대구시 남산동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60년대에 텔레비전과 라디오, 전축, 전화기를 들여놓고 살만큼 부잣집이었단다. 아버지가 발행했던 어음은 현금처럼 통용됐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초등학교 2학년무렵 서문시장에 큰 불이 났고 부모의 사업은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그야말로 완전히 망한 것이다. 밥을 굶는 날도 흔했고 이사간 칠곡에서 대구의 남산학교까지 걸어서 다녀야 했다. 새벽엔 조간 신문 배달을 했고 학교 수업을 마친 후엔 석간 신문을 배달했다. 대구시내 극장 주변을 돌며 껌을 팔고 신발도 닦았다.

김씨는 가난 탓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고 한다. 멋적게 졸업장을 받기는 했지만 6학년땐 두 달도 채 다니지 못했다. 6학년이던 어느 날 석간 신문을 배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논에 가방을 던져 버렸다. 그것으로 학교와의 인연은 끝났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했고, 돈벌이와 공부를 다 감당하기엔 그의 어린 몸뚱이는 아직 약했다.

그런 김씨가 며칠 전 국무총리 표창장을 받았다. 신문팔이, 껌팔이, 중국집 배달부, 화물차 조수였던 소년이 이웃의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20년간 일한 공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가 이웃의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썼던 돈을 굳이 따지자면 10억원쯤 된다. 김씨는 허름한 골목에서 포장마차를 열었던 시절부터 가난한 이웃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들안길에 반듯하게 식당을 차린 이후 매월 2차례씩 수백 명에게 무료 급식을 해왔다. 손님이 먹을 삼계탕은 2시간 정도 끓이지만 장애인들이 먹을 삼계탕은 6시간 동안 끓인다. 흐물흐물해져 쉽게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다. 걷지 못하는 장애인에게는 휠체어를 사주었고 무의탁 노인과 장애인들을 번갈아가며 매년 제주도 관광을 보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들이 끼니를 굶지 않도록 대형 급식차를 주문 제작했고, 빨래방 차도 지원했다. 물질적 지원뿐만 아니라 젊은 장애인을 위해서 포장마차 운영법과 요리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의 이웃사랑은 마지못해 돈 몇 푼 내는 식이 아니다. 여행이나 행사 때마다 동참해 사진을 찍고 비디오 촬영을 해 한사람 한사람에게 추억을 전달한다. 여행 내내 장애인들의 휠체어를 버스에 싣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휠체어가 오를 수 없는 곳은 장애인들을 안아서 옮긴다. 김씨가 실천해온 함께 살기 운동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다.

김씨는 봉사활동에 고1, 중2인 두 아들을 꼭 참여시킨다. 아버지의 흉내라도 내는 아들들로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두 아들은 이제 아버지 흉내내기를 넘어 스스로 실천할 만큼 성숙했다.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받아야 했던 터무니없는 오해와 시기도 두 아들이 이웃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으로 모두 상쇄됐다.열심히 돈벌었고 여가마다 봉사활동을 하느라 김씨에게는 친구가 몇 없다. 그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대부분 사회복지사들. 대구시내 사회복지사 중 100여명을 잘 알고 그 중 40∼50명은 말을 트고 지낼 만큼 친하다. 김씨에게는 그들이 든든한 후원자고 복지사들에게는 김씨가 든든한 후원자다.

"도장찍기를 위한 봉사도 좋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활동도 좋습니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해본다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베풀어보면 산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피곤한 얼굴로 밤늦게까지 식당을 지키는 김창민씨의 당부다.

조두진 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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