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게 하는 오후

대백프라자는 지금 몇 층인가. 11층에서 혼자 국수를 먹으며, 이곳이 내가 올라와 본 가장 높은 층임을 떠올린다. 내 머리 위로 몇 층이 더 있는지 굳이 알려 하지 않는다. 내 차는 캥거루가 그려진 지하 3층 주차장 하단에 놓여 있지만, 대백프라자 지하가 몇 층인지 잘 모르겠다.

몸 길이보다 몇 배나 더 긴 국수를 먹으며, 희고 가는 올을 건져 입으로 가져가는 오른손을 바라본다. 국물을 마시기 위해 이따금 그릇을 들어 올리는 왼손을 바라본다.

국수를 먹는 몸이 슬프다. 이 슬픔은 아무래도 지상 11층 높이에 있는 것 같다. 가는 국수올에 기댄 허공 속의 몸, 먼길을 돌아오는 동안 참 오래 무사했다.

조금전 10층 갤러리에서 재미 작가 김보현의 그림을 보았다. 가장 큰 작품이 '욕망'이었던가? 그 욕망 앞에 한참을 서 있었던가? 욕망, 욕망의 길이, 국수는 길고 흰 음식, 그 희고 가는 몸뚱아리는 또 얼마나 슬프냐.

-김선굉 '대백프라자는 지금 몇 층인가'

백화점은 욕망의 적나라한 진열장이다. 시적 화자는 아마 대백프라자 갤러리에 그림 구경을 간 듯하다. 11층 식당에서 혼자 국수를 먹으면서 이 시를 생각한 것 같다. 11층이란 표현이 이 시에서는 문제적 진술이다.

땅바닥도 아닌 11층 허공에 매달려 어쩔 수 없이 국수를 건져 올리고 국물을 마시는, 그것도 혼자서 먹는 식사는 시인 자신을 비루하게, 아니 슬프게 만든다. 하지만 먹어야 산다. 그게 숙명이다. 그 숙명 앞에서 그림을 탐미하는 '고귀한 정신'이 절망하고 있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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