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모님'에서 갈치집 아줌마로 변신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그까짓 거 아무 것도 아니데요"
한때 잘나가는 사장 '사모님'에서 '넉살좋은 갈치집 주인'으로 팔을 걷어붙인 이정숙(45.대구시 달서구 상인동)씨. 금속가공업체 사장이었던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과 주식 투자로 전 재산 탕진, 그리고 창업 실패로 이어진 악몽을 딛고 다시 일어선 그에게 신사년(辛巳年)은 그래도 희망이었다.
"97년 여름, 남편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평소 건강하던 분이라 너무나 충격이 컸죠. 남편은 갔지만 남겨 준 재산덕분에 생활 걱정은 안했어요"
고교생 딸을 책임져야 했던 이씨는 주식에 손을 댔고 3년만에 6억원을 날린 뒤에야 자신이 빈털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고기집을 열었지만 이 마저 실패해 지난해 여름 폐업신고를 했다.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젠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다시 창업을 계획했죠. 시장조사를 해 보니 현재 있는 가게터 부근엔 '갈치집'이 없더군요. 대구시내 갈치집은 모두 누비고 서울에도 수십차례 다녀왔어요. 쏟은 차비만 수백만원이 넘습니다"
이씨는 지난 5월 근로복지공단의 실업자 창업자금 3천500만원 대출받고 다른 곳에서 도 자금을 끌어 모아 상인동에 30평 규모의 '탐라 아주망 갈치집'을 열었다. 꼼꼼한 사전준비에다 자존심을 파묻은 '서비스 공세'에 손님은 외면하지 않았다.
하루 평균 매출 50여만원. 근로복지공단도 보기 드문 '성공사례'라며 놀랐다. 이씨도 2년안에 빌린 창업 자금을 모두 갚을 수 있을 걸로 보고 있다.
"아는 사람이 식당에 오면 처음엔 너무 부끄러웠어요. 그러나 '용기' 앞엔 그런 부끄러움도 무릎을 꿇데요" 이씨는 자신이 끓이는 갈치 냄비 속에 '땀'이라는 조미료가 듬뿍 들어있다며 활짝 웃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 31번째 도전에 취업성공
이주용(37.대구시 동구 신암동)씨는 저물어가는 '신사년(辛巳年)'에 '실업자'라는 세글자도 함께 실어 보냈다. 30전 31기의 피말리는 도전끝에 '무인경비업체 대리'라는 새 직함을 안은 해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5월까지 시외버스회사 총무과에서 근무했던 이씨에게도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비껴가지 않았다. 95년 대우자동차에서의 실직 이후 두번째 좌절이었다.
"올들어서는 노동청 산하 대구 인력은행에 매일 나갔어요. 남들은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지만 저는 인력은행이 지난 한 해동안의 '직장'이었죠"
'마르고 닳도록' 드나들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구직자들의 애타는 구직행렬'이란 한 신문 사진에 등장하는 장기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은행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매일 아침 눈에 밟히는 팔순의 노부모와 아내, 딸. '못난 가장'이라는 자책감은 꿈속에서도 찾아왔다. 신사년은 정말 고통스런 한 해였다. 적어도 지난 10월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사전에도 없는 '30전 31기'의 '신화'는 이씨의 인생에서 살아 있었다. 지난 11월, 이씨는 31번째 원서를 무인경비업체 '현대보안'에 넣었다. 경쟁률 40대 1. 종업원 200여명의 기업체가 총무·인사 담당 관리직 사원을 모집한다니 지원자가 구름처럼 몰렸다. 더더구나 고졸출신 지원자는 이씨밖에 없었고 35세를 넘긴 지원자는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회사는 이씨에게 합격 통지서를 안겨 주었다. 세상이 확 열리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내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늘 따라 다녔어요. 보잘 것 없을 지 모르지만 내가 지닌 경력에 대한 애착과 100번이라도 도전하겠다는 오기가 있었으니 여기까지 왔겠죠. 이제는 저를 선택해 준 회사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입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