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수만 물러주이소". "장기두는 사람 어데 갔나".27일 오후 북구 칠성동 '대구쪽방상담소'에선 신명나는 장기·바둑대회가 열렸다. 쪽방상담소 주최로 열린 '쪽방상담소장배(?) 장기·바둑대회'에 참가한 노숙자 및 쪽방거주자 30여명의 열기가 차가운 겨울을 녹일 정도였다. 고심끝에 장기알을 옮기고, 5, 6명의 훈수꾼까지 둘러앉은 모습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했다.
대회에 참가한 노숙자와 쪽방거주자들은 난로옆에 모여 앉아 서로 안부를 묻거나, 음식을 나눠먹으며 모처럼만에 시름을 잊었다. 아쉽게 장기대국 4강전에서 탈락한 이모(41·북구 대현동)씨. 공원 장기판을 돌며 어깨너머로 익혔다지만 장기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월세 13만원짜리 쪽방에 사는 이씨는 "겨울인 탓에 이달엔 5일밖에 일을 하지 못했다"며 "그래도 '식구'들과 오랜만에 마음놓고 놀다보니 마음만은 가볍다"고 말했다. 공사장에서 일하다 다리를 다쳤다는 쪽방거주자 박모(38)씨도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것 같다"며 장기두는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고물수집을 하는 쪽방거주자 김모(40)씨는 상담소 근무자에게 슬며시 음료수 한 상자가 든 봉지를 건넸다. 매주 밑반찬을 만들어주는 상담소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 사무실에 빈손으로 오는 일이 거의 없단다.
장기·바둑대회가 끝나자 윷놀이 한판이 벌어졌다. 달력 뒷장에 매직으로 그린 윷판이지만 윷가락이 한 번씩 구를 때마다 환호성과 탄식이 터져나왔다. 선물로 내복 치약 비누 양말을 안아든 이들의 얼굴엔 오랜만에 웃음이 가득했다.
쪽방상담소는 노숙자와 쪽방거주자들의 친구이자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목욕과 밀린 빨래를 상담소에서 해결하고, 새벽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는 날이면 소일삼아 상담소를 찾는다고.
대구쪽방상담소장 한재흥 목사(42)는 "가족의 정이 그리워지는 연말을 맞아 장기·바둑대회를 열어 노숙자와 쪽방거주자들의 서글픈 마음을 달래주고 싶었다"며 "이들이 어려운 환경을 딛고 스스로 일어서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쪽방상담소 053)425-1774.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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