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2매일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심사평-싱그러운 생명감에 문체감각 활달

본심에 올라온 9편의 작품 중 3편은 각각 그 성취가 일정한 수준을 뛰어넘었다. '선인장'은 비디오 대여집을 꾸려가는 화자가 정신적 외상(外傷)이 심각한 한 여성 고객과 나누는 은밀한 교제기이다.

당연하게도 그 인간적 교제는 삭막한 정서의 점철로 비등하고, 화자 자신도 팔뚝에 흉물스런 화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두 인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분신이다. 착상도 신선하고 짜임새도 구색을 갖췄으나, 어휘 선택에서 허영이 드러나 있을 뿐더러 오타·오문이 두드러져 민망하다.

'플라스틱의 꿈'은 2만5천평에 달하는 한 쇼핑몰에 대한 원근법적 조망을 시도한 특이한 작품이다. 후기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어차피 인공의 보조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메시지도 신선하고, 여러 주요 인물들의 명멸하는 의식 일체의 조감에도 박진감이 넘실거린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색적인 배경에 상응하는 숱한 현학적 외국어의 남발, 스토리의 일관성 결여 같은 흠결도 제멋대로 떠올라 있어 아쉽다.

'은빛 지렁이'는 그 진박감·핍진감이 두루 뛰어나다. 현장감이 생생하게 묻어있는 문체 감각도 활달해서 스토리 자체가 내발적으로 구축한 싱그러운 생명감과 걸맞게 어우러져 있기도 하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의 야성적 정서를 이만큼 가독력 좋게 직조한 성과는 괄목하기에 충분하다. 기층민의 생태학이라고 해도 좋을 이 힘좋은 작품이 입담 좋은 사람의 구수한 이야기 한자락에 그치지 않고 있음은 그 결말의 진정성 토로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서 독후감의 여운이 길다. 당선을 축하하며 쉬임없는 정진을 당부한다.

김주영(소설가)

김원우(소설가·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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