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의 벼룩시장에 가면 없는게 없다. 프랑스 북부지방의 중소 도시 릴(Lille)은 해마다 9월 첫째 주말이면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장터로 변한다.
크고 작은 도로와 도심 구석구석의 작은 골목까지 장사꾼들의 좌판과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곳곳에서 흥정을 벌이는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말소리.
손님을 끌기 위한 장사꾼들의 부산한 움직임들.... 고물 리어카와 뻥튀기 아저씨만 등장한다면 삶의 열기가 질펀하게 녹아나는 우리네 시골장터 풍경과 다를게 없다.
주말 오후 3시부터 다음날 자정까지 반짝 열리는 이 유럽 최대의 벼룩시장을 찾는 인파는 자그만치 100만여명. 프랑스는 물론 벨기에.독일.스위스.룩셈부르크와 영국사람들도 장터 정경을 즐기면서 생필품을 싸게 구입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그러나 시 전역의 도로와 광장이 헌 물건 장터로 변하는 재미있고 경제적인 이 이벤트는 막연한 물물교환의 장이 아니다.
온 도시의 주민들이 모두 주역으로 등장하는 만남의 장이다. 골목마다 시민들이 몰려나와 좌판을 차리고 저마다 소지품들을 팔며 장터 열기에 몰입하기 때문에 릴 사람들은 이 행사를 주저없이 '축제'라고 부른다.
릴 장터에는 정말 별게 다 있다. 입던 옷가지며 쓰던 냄비와 솥.가전제품 등 집안의 온갖 낡은 생필품들과 녹슨 골프채는 물론, 손때 묻는 장난감과 어릴 때 물던 젖꼭지, 꼬질꼬질한 밀랍인형, 시뻘건 녹으로 뒤덮인 구멍 뚫린 공구통, 중세 귀족들의 유품인 고가구, 걸레같은 카페트 조각 등과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낀 골동품과 미술품들이 제각기 가격표를 달고 손님을 기다린다.
먼지 앉은 동남아 불상과 때묻은 일본 탈, 빛바랜 동양화도 더러더러 눈에 띈다. 밑도끝도 없는 물건의 종류 만큼이나 가격도 1~2프랑에서 수만 프랑까지 천차만별이다. 거래되는 액수도 가히 천문학적이다.
2평짜리 허름한 좌판에서 반나절 동안 올리는 판매고가 우리 돈으로 100만~400만원. 그것만으로도 장터를 빼곡히 메운 수많은 내.외국인들이 릴에서 숙식을 하며 뿌리는 돈의 규모도 알만하다. 그래서 릴 시당국도 장터의 구축과 청소 등 시장 형성에 직.간접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릴에서 만난 시민 알렉산드르 꼴랑(Alexandre Collin)씨는 "축제기간 큰 길은 타지에서 몰려든 상인들에게 내주지만, 그 외의 작은 도로들은 지역주민들 차지"라며 "대부분의 상점들도 문을 걸어 잠근채 장터축제에 합류한다"고 밝혔다.
릴의 벼룩시장은 오후 3시에 공식 개막한다. 그러나 성급한 상인들은 이러한 규칙에도 아랑곳 없이 일찌감치 좌판을 벌이기 일쑤. 이같은 상인들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시 당국이 마련한 대책이 마라톤 축제.
시 전역을 통과하는 오전의 마라톤 대회로 상인들이 길에다 물건을 늘어놓는 일을 자연스럽게 제지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다. 그렇지만 장터 분위기는 이래저래 이른 아침부터 후끈 달아오르기 마련이다.
릴 장터축제를 제대로 즐기려면 홍합과 감자요리 그리고 벨기에식 맥주 맛보기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겨울철 우리네 포장마차를 떠올리는 시원한 국물이 있는 홍합을 여기서는 '물'(Moule)이라고 부르는데, 자칫 '물 먹어라'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좌판에서 벌어지는 호객과 흥정의 북새통과 이것저것 먹거리 냄새로 가득한 릴 장은 자정까지 계속된다. 자정 무렵이면 이틀 동안의 치열하고도 흥겨운 삶의 현장은 막을 내리고 도시는 다시 일상을 되찾는다.
릴에서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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