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무실마을은 전주 류씨 집성촌으로 10여년전만 해도 고색창연한 옛 정취를 맛볼 수 있었으나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대부분 수장(水葬)되고 무실정려각과 수애당, 수곡종택 등 전통가옥 일부만이 이건돼 마을의 명맥을 잇고 있다.
임하댐 수몰과 함께 한들과 박실, 무실의 일부 족친들은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로 이주해 새로운 80여호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무실 류씨의 입향유래는 조선 정조때 류극서(柳克恕)의 아들 빈(濱.태종 이방원과 동방급제한 친구로 사망 후 승문리에 안장하고 묘를 종능이라 했음)의 4대손 류윤선(柳潤善)이 영주군수 류윤덕(柳潤德)을 따라 내려온 것이 발단이 됐다.
류윤선은 그 곳에서 사직(司直) 박승장의 딸을 아내로 맞아 오천(汚川)에 머물러 이 인근 지역의 시조가 됐으며 이후 아들 둘을 두었으니 첫째가 성(城)이고 둘째가 원(垣)이었다.
첫째 류성이 내앞(川前)에 살던 청계공 김진(金璡)선생의 딸과 결혼해 인근의 무실로 이사해 수곡파의 입향조가 됐다. 이후 이들 류씨들은 자손이 번성해 6개파로 나눠 졌으며 무실을 본산으로 한들과 박실, 고천, 맛재, 개실, 삼산 등지로 흩어져 살아왔다.
입향조 성의 맏아들 기봉은 일찍이 명문이 높아 한강(寒岡) 정구(鄭逑)선생과 교분을 가지고 임란때에는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또 16세기부터 19세기 말엽까지 이 마을에서 문과에 10명, 생원과 진사에 37명 등 모두 112명이 출사했으며 각종 문집을 남긴 사람도 70여명이 넘어 지금까지 151종 551권의 책이 남아있다.
무실에는 5명의 불천위를 모시고 있으며 목민관으로 추앙받던 관현과 정원, 학덕이 높았던 류우잠과 류직, 상변통고를 집대성한 류장원, 경술국치를 만나 의병장으로 순국한 류시연, 항일계몽운동의 선각자 류인식, 상해 임시정부 국무위원 류림 등 영남 사림의 큰 맥을 잇는 인물들이 배출됐다.
이 마을에는 입향조 류성의 처인 김씨의 정렬을 기리기 위해 인조 13년(1635)에 세운 무실정려각(경북도민속자료 48호)이 마을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15세에 전주 류씨 가문으로 출가해 25세에 남편 류성이 별세하자 10세 미만의 두아들을 손수 가르치고 삭발과 냉방에 거주하면서 3년상을 마치고 단식으로 순절하니 조정으로 부터 열녀의 정려가 내려졌다.
지금도 저녁놀 지는 임하호를 바라보면 숙인 김씨의 남편을 그리는 지극한 정성이 오롯이 전해오는 듯 하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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