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분만실 향해 신경 곤두세워 안절부절

아기는 엄마 혼자 배아파하며 낳는 게 아니다. 분만실 바깥에서 아내의 출산을 기다리는 예비 아빠들도 힘들고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첫아기든 둘째아기든 아내를 분만실로 보낸 남편들은 좀처럼 평상심을 유지하지 못한다.

보호자 대기실의 텔레비전은 신년 특집 방송으로 쉴새없이 떠들어대지만 남편들의 신경은 분만실을 향해 날카롭게 서있다. 며칠째 낮엔 출근하고 밤은 병원에서 새우느라 지칠대로 지친 남편들도 있다.

조금전 제왕절개 수술 동의서에 손도장을 찍고 나온 정판환(32)씨, 고개를 숙인 채 복도를 쉴새없이 오락가락한다. 의사는 다정한 얼굴로 제왕절개 수술에 대해 설명했지만 불안감을 떨치기 힘든 모양이다.

"제왕절개 수술은 안전한 수술입니다. 그러나 확률은 매우 낮지만 폐렴에 걸릴 수 있고 몇 가지 감염은 물론 경우에 따라 산모나 아기가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손도장 찍으시죠".

아내를 분만 수술실로 보내는 남편이라면 누구나 듣는 말. 정판환씨도 그와 비슷한 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분만실 바깥 복도를 초병처럼 오가던 그는 복도끝 창가에 몸을 붙인 채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다. 기도를 하는 중이다. 사람 좋아보이는 얼굴, 불안에 휩싸인 그는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리고 말 것처럼 보인다. 대기실의 수많은 남편들 중에서도 그는 유독 초조한 표정이다.

"아내가 많이 아파요". 둘째아이인데 왜 그렇게 초조해하는가 묻는 취재진의 말에 그는 애써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휴대폰이 울린다. '예, 예'라고만 답하는 그의 목소리엔 불안이 잔뜩 배어있다.

아내를 수술실로 보내고 20여분. 간호사가 분만실 문을 열고 정씨를 찾는다. "딸입니다. 3시 41분에 태어났고요. 3천630g입니다". 순간 정씨의 얼굴에서 긴장이 사라지고 눈동자는 물기로 반짝인다.

딸이라 실망했는가 묻는 말에 정씨는 "저야 괜찮아요. 저는 정말 괜찮은데 시골의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겁니다. 제가 외동아들이거든요". 그는 첫아이도 딸이라고 덧붙였다.

"시집장가 보내놓고 보이 아들보다 딸이 훨씬 낫더라. 며느리 등쌀을 우째 감당할라꼬 아들 타령이고..." 분만 대기실에서 만난 한 시어머니의 말이 그에게 위로가 될까.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정씨는 아내의 아픔을 생각했고, 혹시 있을지 모를 사고에 불안해했다. 수술이 끝난 후엔 시골의 부모님과 마취에서 깨어나 실망할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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