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 이후 활자 매체는 정신문화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문학은 오랜 세월 동안 그 중의 꽃이었다.
인간이 추구하는 고귀한 정신과 사유, 아름다운 마음의그림들이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돼 왔다. 삶의 고뇌와 세상의 혼돈을 파헤치고, 어둠 속에 묻히거나 그런 위기에 놓인 진실과 가치를 밝혀 우리를 따스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지면서 문학은 사양길을 걸었다. 독자들이 크게 줄면서 '문학이 죽어 간다'는 비관론이 널리 퍼지는가 하면, 점점 더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형편이다.
문학의 영향력이 상당 부분 이미 영화·텔레비전·컴퓨터 화면 등으로 넘어가 책상 앞에 앉아 문장 수업을 해야 했을 젊은이들이 캠코더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가 하면, 문학에 열정을 쏟을 법한 재능과 자원이 '영상매체와 가까운 문학'의 변방으로 떠나는 추세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미증유의 불황 한파가 불어닥친 이래 문화예술계 전반이 그렇듯이 문단은 극심한 침체와 몸살을 겪어 왔으며, 그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다.
문인들의 발표 무대인문예지와 문학출판사들이 문을 닫거나 뒷걸음질해 '문단의 공동화(空洞化)' 우려마저 떨칠 수 없는 지경이다.
1955년 1월 전후의 폐허 속에서 창간, 우리의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최장수 월간 문예지로 47년간 통권 565호를 기록하기까지 단 한번의 결호도 없이 발간돼온 '현대문학(現代文學)'이 위기에놓여 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이 문예지는 한때 매월 수만부를 찍어낼 정도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 560여명의 문인들을 배출했다.
"'현대문학'에 작품이 실려야 비로소 문인 대접을 받는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던 과거를 떠올린다면 서글프기 그지 없는 일이다.
대한교과서 주식회사는 그동안 비용을 지원해 왔으나 지금까지 5억원 가까이 적자가 누적돼 이 문예지의 자체경쟁력을 갖추거나 다른 지원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뿌리 깊게 순수문학을 지향해 왔지만 편집 취지의 퇴색은 물론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게 됐다.
문학이 죽어가는 시대에 문예지가 성하기를 바라기는 어려울는지 모른다. 문화 상업주의의 물결에 문학과 그 텃밭인 문예지가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는 일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문학'마저 흔들린다면 우리 문단과 문학의 위기이며, 순수문학이 '벼랑 끝'에 이르렀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120여명의 인사들이 이 문예지 1월호에 '현대문학을 아끼는 사람들'이라는 후원회 명단을 싣고, "한국 문학의 자존심 하나만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며 돕기에 나섰다.
"좋은 문예지는사회의 공기이며, '현대문학'은 우리 문단 전체의 문화 유산"이라고 천명한 이들은 "반세기 동안 한국문학의 존엄을 지켜 온 이 소중한 문예지의 전통과 긍지는 유지돼야 한다"며,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속간하는 다른 문예지들에도 이런 뜻이 확산돼 한국 문학의 터전을 굳게 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고도 밝혔다.
날이 갈수록 병들고 부도덕한 문화가 우리를 에워싸고,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느낌이다. 원칙이 없는 '정치 문화', 양심이 고갈된 '쾌락 문화', 인격을 도외시하는 '지식 문화', 도덕성이 밀려나버린 '산업 문화',능력보다는 줄서기와 줄대기 위주의 '패거리 문화', 인간성이 배제된 '과학 문화' 등이 그 주역들이며,이런 분위기는 물신주의와 배금주의를 더욱 부추기는 형국이다.
하지만 언제나 정신의 힘은 물질의 힘보다 강했다.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정신문화가 물질문화를 지배했을 때만 융성했으며, 그렇지 못한 경우는 그 반대였다.
우리의 정신문화가 뒷걸음질하거나 황폐해지고 있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지상과제는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 옹호에 있다.
그 순수성이 지켜질 때만이 제값을 하고 빛을 내게 된다. 문학의 존엄을 해치는 상업주의가 횡행하는 가운데 아직도 품위와 긍지를 지키며 문학의 텃밭을 일구고 가꾸는 문예지는 개인의 소유라 할지라도 사회의 '공기'이며, 우리의 '희망'이다.
'현대문학'뿐 아니라 순수성을 잃지 않은우리의 '공기'와 '희망'은 살아 남을 수 있어야만 한다.
논술위원 이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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