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의 시베리아' 봉화 춘양

"날씨가 그렇게 춥다는데 어떻게 사노?"… '한국의 시베리아'라 불리는 봉화 춘양사람들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이다. 혹한지(酷寒地)로 명성을 떨치면서 출향인사들은 물론 이곳 방문객들도 요즘은 만나기만 하면 날씨를 단골 화제로 삼는다.

◇얼마나 춥나? = 흔히 남한에서 가장 추운 곳은 철원.대관령.홍천 등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상 관측 결과 가장 추운 곳은 춘양으로 확인됐다.

지난달엔 10차례, 작년 11월엔 19차례나 춘양이 전국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3일엔 춘양의 최저기온이 영하 20.2℃였으며, 지난달 중순 이후 최저기온은 계속 영하 15℃를 밑돌고 있다. 하루 8차례 기온을 재 평균하는 일일 평균기온도 이 기간 영하5∼영하10℃로 나타났다.

그뿐 아니라 춘양에선 10월 하순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영하의 날씨가 계속된다. 춘양기상관측소 권동기(51) 소장은 "5월에도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어떤 일이 벌어지나? = 춘양주유소 권용섭(45)씨는 "이번 강추위로 배달용 탱크롤리에 실린 경유가 뻑뻑해져 기름을 빨리 넣을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동해(凍害)도 잇따르고 있다. 의양리에서 설비업을 하는 이석근(32)씨는 "최저기온이 영하 20.2℃로 떨어진 3일 하룻 동안에만 동파된 수도계량기를 6건이나 수리해 줬고, 올 겨울 들어 하루 평균 3∼5건의 동파된 수도.보일러 수리 의뢰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자동차 정비업소도 호황. 경유를 쓰거나 오래된 차량들의 시동이 잘 안걸리기 때문이다. 카센터를 하는 황유진(30)씨는 "3일 하룻 동안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원료계통이 얼어붙은 차 20여대를 수리해 줬다"고 말했다. 황씨는 매년 겨울철만 되면 하루 평균 10대 이상의 차량이 이같은 고장으로 문제를 주인을 고생시킨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춘양을 가로지르는 운곡천이 꽁꽁 얼어 붙은 지 오래지만 스케이트나 썰매를 지치는 어린이는 찾기 힘들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조차 나다니는 일이 거의 없다. 춘양에서 가장 이동인구가 많은 면 소재지에서도 5일장 장날을 빼고는 사람 발길이 뜸하다.

그러나 이곳에선 내복을 입는 청장년층이 드물다. 토박이 변동탁(45)씨는 "영하 10℃ 이하 날씨에도 워낙 단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도 추위는 어쩔 수 없는지, 추위로 면역이 떨어지면서 노인층을 중심으로 감기환자가 많은 것도 춘양이다. 춘양 중앙의원 정재훈(29) 원장은 "요즘들어 감기 증세로 찾아 오는 환자가 평소의 하루 10여명에서 30여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하우스 농사 연료비 부담 폭증 = 춘양은 고랭지 딸기로 유명한 곳. 딸기가 저온에 잘 적응함으로써 다른 지역 생산품보다 당도가 높고 육질이 단단하며 저장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배농들에겐 강추위가 큰 부담이다. 보온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고 그 비용도 훨씬 많이 드는 것. 의양리 박연거(50)씨는 "남부지역에선 비닐하우스를 이중으로 하면 되지만 이곳에선 5중 이상으로 해야 하고, 일조량이 적어 백열 전구를 밤새 켜둬야 해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연일 영하 10℃ 이하의 강추위로 생육이 지연되고 수확량 감소, 출하 지연 등이 우려돼 20여 딸기농들의 걱정이 태산이라고 도 했다.

가정에서도 연료비 부담이 만만찮다. 영주에서 이사 왔다는 김황숙(30.여)씨는 "이번 겨울 들어 기름을 이미 4드럼이나 썼다"며, "영주보다 난방비가 2배는 드는 것 같다"고 했다.

◇왜 이렇게 추울까 = 기상관측소 권 소장은 "내륙 산간 분지여서 찬 기류가 제빨리 빠져 나가지 못해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춘양면을 놓고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달려, 북으로는 각화산(1천177m), 동으로는 황악산(802m), 남으로는 황우산(601m), 서로는 문수산(1천206m)이 둘러 싸고 있다는 것.

여기다 밤이 돼 온도가 내려가면 땅의 열이 대기 밖으로 방출되는 복사냉각까지 가세해 체감 기온보다 실제 기온이 더 떨어지는 현상까지 빚어진다고 권 소장은 설명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춘양 사람들은 이곳 이미지가 '동토'로 고착되지나 않을까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추위를 자원으로 = 그러나 이런 추위를 색다른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실제 그러려는 시도도 있다.

의양리 이경근(45)씨는 "춘양이 혹한지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만큼 강추위와 자주 내리는 눈 등 특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눈꽃열차 운행으로 유명해진 승부역처럼 지역 주민소득과 연계할 수 있는 겨울 이벤트나 자연 친화적 사업이 필요하다는 것.

이런 요구를 감안한 듯, 봉화군청 유우태 경영개발 담당은 "서벽리 문수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구릉지가 펼쳐져 있고 눈이 내리면 늦은 봄까지 잘 녹지 않는 특성을 가진 만큼 이를 최대한 살린 관광지 조성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봉화.김진만기자 fact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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