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를 경악케한 9·11 테러사건 이후 중동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졌다.
알라신과 코란, 차도르와 베일차림의 여성들, 모스크의 독특한 건축양식,초승달 문양의 국기….
그간 우리에게 알려진 이슬람세계는 극히 단편적인 이미지에 그쳤다. 이때문에 이슬람세계에 대한 편견과 오해도 적지 않았다.
멀게만 여겨져온 그곳 사람들과 이슬람적 삶의 방식 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해짐에 따라 이슬람 세계를 좀 더 가까이서 느껴볼 수 있는 새 기획물 '이슬람 문화탐방-이집트를 가다' 를 연재하기로 한다.
그리스 거주 자유기고가 하영식씨가 이슬람권의 맹주격인 이집트를 현지 취재, 무슬림 국가의 가족제도와 여성, 교육, 오아시스의 삶, 카페문화와 아랍문학, 왜곡된 이슬람 세계 등 다양한 주제로 다루게 된다.
편집자
◈필자 하영식
△1965년 대구생
△영국 쉐필드대학 클리프 칼리지 졸업(신학)
△아테네 칼리지 강사(동양문화)
△그리스어판 '헤럴드 트리뷴', '한겨레21' 등에 자유기고가로 활동
△현재 그리스 아테네 거주
오후 4시경, 이집트의 카이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는 마치 우리나라의 명절 귀성행렬처럼 엄청난 교통혼잡을 빚었다. 모든 차들이 아기 걸음마하듯 느릿느릿 움직이는 가운데 가까스로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슬람 세계 전체가 '라마단'이라는 금식기간 중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필자도 '4시의 교통대란'은 수수께끼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난 5시가 되자 그 의문은 풀렸다.
갑자기 거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고 카이로 전체가 총파업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듯 자동차 한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우리나라 농촌사람들이 모내기 중에 논둑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식사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광경이 거리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식사하는 모습에서 다른 점이라면 바로 '남녀유별(男女有別)'이었다. 남자는 남자끼리,여자는 여자끼리만 둘러앉은 모습이었다. 거리의 교통경찰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둘러앉아 식사에 여념이 없었고, 거리의 상점들도 모두 철시를 하고 상점안에서 가족·친지들끼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것을 '이프타르'라고 하는데 하루의 금식을 깨는 식사로 현지인들은 '오후 5시의 아침식사'라고 농담삼아 말한다. 그리고 하루의 금식을 시작하기 전 새벽식사를 '수흐르'라고 하여 '이프타르'와 함께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라마단 금식은 새벽에 시작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금식하는 사람들에겐 오후 3~4시 사이가 가장 힘든 시간대이다. 특히 건조한 사막기후에서 하루종일 물 마시는 것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라마단 초기의 며칠동안은 많은 사람들이 탈수증세로 고생한다.
"그래도 이번 라마단은 겨울에 있어서 다행입니다. 여름에 라마단이 있는 경우는 정말 힘들지요. 갈증으로 혀가 타들어가는 듯 고통스러워서 많은 사람들이 아예 일손을 놓고 집안에서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많답니다"고 중학교 교사인 무스타파 엘 파로티(35)씨는 말했다.
라마단은 음력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어떤 해엔 여름,어떤 해엔 겨울로 그 시기가 매년 달라진다.
또한 이집트의 라마단은 자발적인 참여 아래 이루어진다. 다른 이슬람국가들과는 달리 모든 음식점들이나 식품점들이 문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라마단이 치러진다. 인구의 약10%를 차지하는 소수 기독교인들(콥틱정교회)이나 비이슬람권 외국인들에 대한 배려라고나 해야할까.
"사우디아라비아나 이란·이라크 등 엄격한 이슬람 법률이 적용되는 국가에서는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음식점이나 슈퍼마켓들이 아예 문을 닫아버려 비이슬람 교도들도 덩달아 금식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지요". 향수대리점을 운영하는 아흐멧 타이엘(53)씨는 이집트의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은근히 자랑했다.
각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해도 여하튼 라마단 기간은 전체 이슬람세계가 하나라는 공감대를 확인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자말렉구의 한 길모퉁이를 돌아 어느 아담한 모스크(이슬람교 사원) 앞에 이르자 매우 이색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모스크의 앞마당과 뒤켠에 천막으로 만든 간이식당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휘황찬란한 불빛 아래 식사하는 장면이었다.
식사를 하던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낯선 이방인인 필자를 반기며 자리를 만들어 주고는 음식을 권했다. 평소에도 이방인에게 친절하고 관대하기로 소문난 이집트 사람들이지만 특히 라마단 기간 중엔 지나치다 할 정도로 친절하다.
오후 5시가 지나 거리를 배회하노라면 많은 사람들이 팔목을 잡아당기면서 자신들의 식탁으로 함께 갈 것을 권하곤 한다.
모스크나 거리 곳곳에서는 한달간의 라마단 기간 내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식사가 베풀어진다. 나왈 하산 이집트문화연구소 소장은 "무와에드 알 라흐만(자선의 식탁)이 오랜 전통 풍습으로 굳어졌다"고 말했다.
이 '자선의 식탁'은 자선단체나 공공기관에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재력있는 개인들이 라마단 기간 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종교적인 믿음으로 기부한다.
라마단 기간 중 매일 카이로 시민들은 오후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중심가인 타흐릴광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거리는 밤늦게까지 하루 동안의 금식을 자축이라도 하듯 인파로 뒤덮이고 모스크의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코란의 독경소리는 사람들의 귀가를 재촉하면서 다음날의 금식을 은근히 알린다.
하영식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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