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대륙 한복판에 위치한 인디오의 나라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페루 등 이웃 강국들에게 둘러싸여 하늘로만 길이 뚫린 내륙의 섬.
한때 마약(코카) 재배국가로 오명이 높았지만 들불로 치솟은 5,000m급 설산 1천여개를 거느려'안데스'의 감동이 대륙의 어느 나라보다 강렬한 '남미의 티베트'. '세계오지탐사' 안데스팀(단장 김춘생)은 바로 이곳의 자연과 문화를 탐사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원정대장 박주환(47.대한산악연맹 이사), 등반대장 오세민(26.대전대4), 촬영 기록담당 방경환(26.전남대3), 식량 행정담당 마림(25.강원대3), 수송 의료담당 조상희(20.천안공전2) 등 대원은 7명. 모두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지닌 산사나이들로 이뤄졌다.
해발 평균 3,600m의 고원도시 라파즈(볼리비아의 수도)에 도착한 날짜는 작년 7월13일 새벽 1시30분(현지시각). 비행시간만 22시간, 비행기를 갈아 타고 연착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무려 4일이 걸렸다. 라파즈 도착 3일째, 대원들은 티티카카호 유적답사를 위해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해발 평균 3,800m, 전라남도 크기의 호수면, 항행할 수 있는 세계최고 높이의 담수호, 인디오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영혼의 고향 등….
대원들은 익히 알고 있는 호수에 대한 이런 수식어들을 떠올리며 관광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라파즈 시내를 한바퀴 돈 뒤 티티카카호로 향했다. 시내는 마침 출근길이었다.
거리는 나라의 수도답게 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붐볐다. 번듯한 고층건물도 많이 보였고 고색창연한 스페인 풍의 성당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뭔가 어둡고 무거워 보였다. 나무가 거의 없고(수목의 생장한계선은 위도에 따라 다르나 볼리비아에선 대략 3,600~3,700m임) 황톳빛 맨흙이 그대로 드러난 고원지방 특유의 지형적 특성만이 아니었다. 소수 스페인계 백인들과 다수 원주민들과의 '넘침'과 '모자람'의 대비가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었다.
백인들은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정원까지 갖춘 호화주택에 살고 있었으며 거무튀튀한 피부의 원주민들은 문짝조차 없는 성냥갑집에서 나와 폐기직전의 트럭을 타고 다녔다. 선입견일까. 그럴수록 백인들은 더욱 깔끔하고 발랄해 보였으며 원주민들은 더 초라하고 더 궁색해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들도 알토(알티플라노고원)로 올라가면서 사라지고 말았다. 라파즈보다 300~400m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알토는 원주민들의 주된 거주지였다. 하지만 이곳에선 백인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더욱이 나무조차 한그루 보기 힘들어 분위기는 더욱 황량했다.
대신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움막과 짓다말고 내팽개쳐진 집, 낡고 해진 옷을 입은 꾀죄죄한 모습의 어린이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와 함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짐작되는 참담한 가난이었다. 500여년전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잉카제국.
대륙침탈이 자행되지 않았다면 세계 어떤 문명보다도 빼어났을 인디오의 신화. 그 제국의 후예들은 지금 역사의 뒷전으로 물러앉아 하루하루를 이어가기에도 버거운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차내의 분위기도 덩달아 가라 앉았다. 창가에서 시선을 돌린 한 대원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윽고 버스는 티티카카호 호반마을인 푸에르토페레스에 닿았다. 코발트색보다 더 짙은 감청색.
태고의 빛 그대로 출렁이는 호수가 숨막힐 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신기루일까. 다가설수록 아찔한 현기증이 끝없는 호수 저 너머로 아련하게 피어올랐다. '아니 이런 고원에 저렇게 넓고 깊은 호수가 있다니…'.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믿기지 않는 눈치들이었다. 더욱이 흰눈을 머리에 인 볼리비아 연봉들도 호수를 따라 꿈결처럼 이어져 있지 않은가.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자연의 경이 앞에 대원들의 입에선 그저 탄성만 쏟아져 나왔다. 볼리비아 인디오. 인구의 55%, 혼혈계인 메스티스족까지 합치면 거의 90%에 육박하는 나라의 주인이면서도 어깨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사는 역사의 희생자들.
그들이 티티카카 호수를 유독 신성시하는 것은 비단 이곳이 그네들의 뿌리라서뿐 아니라 답답한 마음을 씻어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데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미의 티베트'볼리 비아는 이렇듯 아프고도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글=진용성기자 ysjin@p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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