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죽장면에서 발원한 금호강이 영천과 하양을 굽이 돌아온 잰걸음을 잠시 멈추고 쉬는 곳, 대구시 동구 금강동 일대 안심습지.
영천 방향 4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안심 지하철차량기지쪽으로 내려서 1km 남짓 걸으면 수만평 위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갈대.물억새밭이 손짓하며 반긴다.
한겨울 차가운 북풍이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이 곳엔 올해도 어김없이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먹잇감이 떠오를 때를 기다리는지 꼼짝도 않고 서있는 백로. 얼지않은 강가쪽에서 한가로이 떼지어 돌아다니는 청둥오리들.
적막하리만치 고요하던 습지가 낯선 발자국 소리를 들었을까. 푸드득 소리와 함께 청둥오리 한 무리가 갑자기 날아오른다. 곧이어 어른 키만큼 자란 갈대밭에 몸을 숨기고 있다 박차고 오른 녀석들도 저편 하늘에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1월의 겨울이지만 이 곳, 안심습지는 활기가 넘친다.
7만㎡에 이르는 안심습지는 생명의 신비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생태박물관'이다. 환경부 지정 특정식물 1등급 종인 노랑어리연꽃 등 식물 192종, 한국 고유종인 아무르산개구리 등 양서파충류 9종 및 나비잠자리.물둥구리 등 곤충 99종이 서식하고 있다.
각종 철새 등 조류 56종과 줄납자루 등 어류 26종도 살고 있으며 특히 국내 미기록종인 안심염라거미 등 다양한 거미류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또 인근에 자리잡은 십만여평의 식용 연밭도 해마다 꽃이 필 무렵 장관을 이뤄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지난 80년 4월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안심습지는 '자연의 정화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습지를 가득 메운 침수식물, 부유식물, 부엽식물 등 수초들이 질산 등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조류(藻類)의 발생을 억제해 오염된 물을 다시 부활시킨다. 강의 자정작용을 확인할 수 있는 이 곳은 그래서 환경단체들의 생태교육의 장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하천이 땅으로 변하는 '천이과정'을 겪고 있는 습지 일대를 돌아다니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군데군데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듯한 쓰레기와 타다 남은 잿더미는 찾는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상수원보호구역이란 팻말이 무색하리만큼 어지러운 생태계 파괴의 현장은 철새.물고기들 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
이희동 대구경실련 환경개발센터 간사는 "금호강의 중류지역인 안심습지는 오염된 금호강이 이 곳을 지나며 스스로를 복원, 금호강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지만 관리가 제대로 안돼 점점 훼손돼 가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철새들의 날갯짓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려 물길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면 팔공산 자락에서 금호강의 작은 지류인 동화천을 만날 수 있다.
대구시 동구 지묘동 공산댐에서 출발, 북구 동변동에 이르러 금호강과 합치는 길이 15.5km의 동화천은 도심의 공해에 찌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인기가 높다. 특히 왕버들.달뿌리풀.물수세미.고마리 군락 등 수생.수변식물 148종이 다양하게 분포하는 아름다운 경치때문에 봄.가을에는 결혼 야외촬영을 나온 신혼부부들 차지가 되곤 한다.
지방 제2급 하천인 동화천은 또 각종 곤충류는 물론 1급수 지표종인 버들치 등 어류 11종, 줄장지뱀 등 양서파충류 10종과 황조롱이(천연기념물 제323호) 등 조류 44종도 폭넓게 서식, 도시 속의 생태계 보고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외래도입종인 붉은귀거북과 황소개구리도 하천내에 다량 번식, 생태적 관리의 연구가 요구되고 있으며 최근 대형음식점 등이 주변에 잇달아 들어서 옛모습을 잃어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울러 하천변 경작활동과 행락객들의 오염물 불법투기 등으로 수질이 악화되고 있어 지속적 관리감독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주변 무허가건물.오수관로 정비와 하천정화활동에 나서는 한편 사업비가 확보되는대로 친수생태공원으로 조성할 예정이다.
김종원 계명대 생물학과 교수는 "동화천 상류지역(지묘동~도곡교)은 현재보다 건전한 하천경관을 유지할 수 있는 자연지역으로 관리하고 금호강과 합쳐지는 하류지역은 복원사업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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