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줌마 타워크레인 이순득씨

이순득(41)씨는 타워 크레인 기사다. 지난 94년부터 줄곧 대구의 고층 아파트 신축 현장을 누볐다. 25층 아파트의 마감공사 즈음엔 지상 100미터 공중에서 강철 빔을 끌어올리고 운반한다. 별로 써먹어 본 일은 없지만 지게차, 굴착기 면허도 가졌다. 지난달부터는 크레인 작업이 없는 짬짬이 청소대행까지 하고 있다.

타워 크레인 운전은 생각만큼 무섭지 않다. 건설현장 일치고는 깨끗할 뿐만 아니라 크레인 운전실은 냉난방 장치까지 완벽하다. 혼자만의 공간이 주어지는 만큼 작업이 없는 틈틈이 책을 읽거나 노래연습도 할 수 있다.

괴력을 뿜는 타워 크레인은 보기와 달리 무척 예민하다. 건축현장 일이 대체로 울퉁불퉁한 근육에 의존하지만 크레인은 오히려 섬세함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운전자는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에도 바짝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사고는 거의 없다. 몹시 위험한 일인만큼 크레인 운전자도 바짝 신경을 쓰고 지상의 작업조도 잔뜩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이순득씨도 일단 타워 크레인에 오르면 종일 공중에서 머문다. 작업이 뜸하다고 수시로 아래를 들락거리는 일은 성가시고 힘들뿐만 아니라 비능률적이다. 출근과 동시에 크레인에 오르고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크레인에서 내린다. 점심식사 때를 제외하면 늘 크레인에 머무는 셈이다.

이순득씨의 노동은 돈벌이와는 좀 거리가 있는 듯 하다. 오직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고된 청소대행이 즐거울 리 없다. 어쩌면 그는 삶과 노동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사람일는지도 모른다. 평범한 주부가 지게차와 굴착기를 배우고 부산까지 내려가 크레인 운전 면허시험을 친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손에 익은 타워 크레인 운전을 한쪽으로 밀쳐두고 고되고 서툰 청소대행에 나선 것도 상식인은 모를 일이다.

이씨는 확실히 부지런한 사람이다. 퇴근 후에는 여기저기 강좌를 듣는다. 여성 인권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대부분 자동차 운전자들이 운전은 할 줄 알지만 차는 모르듯 대부분 크레인 기사들도 크레인을 모른다.

그러나 이씨는 일부러 전기제어에 대해 오래 공부했다. 크레인이 복잡한 전기제어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바깥일을 핑계로 아내와 엄마의 자리를 게을리 하지도 않는다. 늦은 귀가 후에는 새벽잠을 설쳐서라도 집안일을 말끔히 처리한다.

이순득씨는 오래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은 법이지만 오래 살고 싶다고 강조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녀가 오래 살고 싶은 까닭은 오직 삶과 노동이 즐겁기 때문이다.

"내일도 새벽 일찍 출근할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거든요". 그는 '할 일이 많아서 새벽 일찍 출근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새벽 일찍 출근할 겁니다'라고 말한다. 이씨는 낮이 길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이 많기 때문이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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