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궁금해 견딜 수 없었어요".
장애인 복지시설을 떠나 자립했던 정신지체, 신체지체 장애인 장웅하(37), 최성환(28), 정호기(27), 김성균(21)씨. 4사람은 자립 2년 만에 대구시 수성구 시지의 전세 아파트에서 집들이를 열었다. 함께 생활했던 시설 친구들, 자신들을 돌보아 주었던 사회복지사 등 25명을 초대했다.
예쁘게 과일을 깎아 놓았고 미역국도 끓였다. 푸짐하게 전도 부쳤다. 4명이 살기엔 한없이 넓어 보이던 20평 남짓한 아파트는 북새통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좋다. 누군가를 초대해 왁자그르르 떠들 수 있다는 사실은 시설에서는 맛보기 힘든 행복이다. 집들이엔 웅하씨의 약혼녀도 참석했다.
4인의 집들이는 여느 신혼부부의 집들이와 다르다. 30년 혹은 20년을 시설에서 보낸 이들이 시설을 떠나 자립할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이들의 자립을 적극 추진해온 복지 전문가들마저 실패를 예감했을 정도다. 그러나 4인은 서로를 채찍질하며 끝내 버텨냈다. 장웅하, 최성환 씨는 올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4인은 만승자립원(정신지체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의 그룹 홈(시설 바깥 장애인 공동 생활가정) 1호이다. 요리도, 빨래도, 청소도 4사람이 알아서 해결한다. 일어날 시간임을 알리는 안내방송도 없고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이라고 타이르는 복지사도 없다. 무엇이든 스스로 챙겨야 한다. 생활비도 스스로 번다.
장씨는 만승자립원 복사용지 생산부에서 일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자동차 부품 조립부에서 근무한다. 막내 김성균씨와 정호기씨는 외부 사업장에 취업한 경험도 있다. 비장애인과 같은 월급을 받았고 똑같이 야간 잔업을 했다. 성실한 종업원으로 인정받아 사장 표창까지 받았다. 어쨌든 4인은 스스로 생계비를 번다.
4인은 자신들이 언제부터 시설생활을 시작했고, 어디서 언제 어디로 옮겨다녔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20~30년의 시설생활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그래서 그럴까. 이들은 영원히 시설 속에서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세상에 나가 살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시설에 오기전의 생활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거리를 걸었으며,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어느 낯선 동네의 담 아래서 흙장난을 하며 지냈는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은 또 어떤 지….
이 집안의 맏형격인 웅하씨는 요즘 막내 성균씨를 타이르느라 바쁘다. 좀처럼 말이 없는 그이지만 성균씨의 늦은 귀가를 그냥 넘기지 않는다. 축구를 잘 하는 성균씨는 한국 장애인축구 대표로 올해 세계 장애인 월드컵(홍콩)에 참가하기로 돼 있다.
정신 지체, 지체장애에다 간질을 앓고 있는 성환씨. 그에게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림을 잘 그려 각종 미술대전에서 여러 차례 입선, 특선도 했다. 칠전팔기로 운전 면허 시험에 도전, 결국 2종 자동차 운전면허증도 따냈다. 악착같이 돈을 모아 컴퓨터도 사고 오디오도 샀다.
올 가을에 결혼할 예정인 그는 신부를 대신해 가구를 사 모으는지도 모른다. 호기씨는 입담이 대단하다. 평소 요리에 통 관심이 없던 그가 이번 집들이 준비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설거지, 잡심부름 담당자라는 불명예를 벗어버리려고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이다.
4인은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약한 들짐승을 닮았다. 거친 잡초와 질긴 넝쿨이 거인처럼 앞을 막고 선 들판을 온전치 못한 몸뚱이로 걸어야 한다. 시설에서 배운 요리, 버스타기, 지하철타기, 전화걸기는 이 치열한 세상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온전치 못한 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낯선 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4인은 실패할 성싶지 않다. 지난 2년의 '그룹 홈' 생활 동안 반상회에도 참석했고 날짜를 어기지 않고 세금을 납부하는 법도 배웠다. 동사무소를 찾아 서류를 떼는 일도 이제 웬만큼 손에 익었다.
이제 사람들은 거리에서, 직장에서, 반상회에서 그리고 노래방에서도 이들을 만날지 모른다. 독자들은 눈인사라도 건넬 준비를 해야겠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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