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열규 세상읽기-자식돈은 돈 아이가?

동네 뒷산에 새 무덤이 하나 늘면 동네 안에는 폐옥(廢屋)이 하나 더 는다. 그리곤 이내 비탈의 논밭 뙈기 한 토막이 또 잡초와 칡넝쿨로 묻히게 될 것이다.

해서, 새 봉분(封墳)이 낡은 빈집을 우두커니 내려다보는 때면, 한낮인데도 햇살이 그들 새를 비껴 간다. 늙은 농군 하나가 가면, 고샅에선 그만큼 인기척이 시든다. 그리곤 마을 안, 생활의 공간에 커다란 동공(洞空)이 하나 뚫린다.덩달아서 밤 바람소리가 커져 가는 집들에서는 기침소리가 밭아진다.

그리하여 그 마을 안의 공동은 한 해 다르고 두 해 다르게 커져만 가지만, 그걸 다시금 메울 낌새는 아무데도 없다.이게 오늘날 두메 마을 , 농사에 의지해서 목숨 이어 나가고 있는 마을의 현실이다. 쓸쓸함은 어찌면 가난보다 더한 것!한데도 가난에 눌려서는 굽어진 허리, 고적함에 시달려서는 멍든 마음….이게 오늘날 우리 시골의 풍속도다.

그래서 마을 안에서는 수시로 아리디 아린 사연, 쓰리디 쓰린 사건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공동(空洞)화 하고 있는동구 안에서 날로 커져 가는 까치떼의 울음소리로는 그 사연들을 담아 내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그러기에 여기, 한편의 이야기를 굳이 글에 담아 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때, 그러니까 삼 년 전 그 때, 예순의 중허리를 넘어선 나이였다. 어쩌다가 동구 안 고샅에서 맞닥뜨릴라 치면, 늘 그가 하던 말, 아니 내뱉듯이 하던 말. "지랄! 인자, 정말 몬 해 묵겄다!" 그럴 적마다 어깨에 멘 괭이는 가뜩이나 굽은 그의 허리를 더한층 찍어누르곤 했다. 그가 뒷산 고개 너머 그의 논배미나 밭뙈기를 다녀오는 때면 그의 '지랄' 소리에 더한층 악이 실리는 만큼, 그의 등은 더 굽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굽어지고 휘어지고 하는 걸로 살아가던 그에게 결정적인 파국이 덮쳐왔다. 그날도 그는 그가 말버릇처럼 '지랄 같다'고 또 '차마 몬 해 묵겄다'고 하던 그 농사일에 지쳐서 터덜터덜 비탈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미 땅거미가 진 가파른 돌자갈 길에서 비틀대다가는 발을 헛디뎠다. 그는 사정없이 경사진 언덕을 굴렀다. 갈비뼈가 두 가닥나갈 만큼, 그의 낙상(落傷)은 심했다.

그는 병원에도 안 가고 앓아 누웠다. 그러잖아도 알콜 중독기가 없지도 않았던 터에 소주로 아픔을 달래는 밤낮이 수삼일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에, 그를 찾아갔다.

"병원엘 가보아야지?"

한데 오만상을 찌그러뜨린 그의 대답은

"지랄, 돈 어디 있노!"

오직 그 한 마디.

반사적으로 다시 물었다.

"자식들에게 전화해줄까요?"

"지랄, 자식 돈은 돈 아이가!"

그러면서 누운 자리에서 고개를 들고는 잔을 들이키는 그에게 나는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머릿골이 멍했다. 명치가 아려 왔다. 그의 한마디가 화살처럼 박힌 것이다.

"지랄, 자식 돈은 돈 아이가!"

그러면서 그는 똥물에 빚은 술을 약이라고 먹어대는 며칠이 지난 뒤, 세상을 떴다. 상여에 실려서는 평소 그가 넘나든 바로 그 고개 넘어 가면서 그는 말했을까?

"지랄, 상여 타고 가니 편해서 좋네".

스스로 돈에 찌들대로 찌들어서야 비로소 깨닫는 자식놈들의 돈의 그 막중한 무게도 함께 싣고 그의 상여는 고개 넘어 갔다.

인제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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