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지난 걸로 쳐놓고, 2002년 한국사회를 요약할 단어를 선정한다면 '자리'가 아닐까 싶다. 벌써부터 달아오르는 양대선거의 열기는 일년 내내 온 나라를 들었다 놓을 것이고, 국민의 눈과 귀는 16명의 시장·도지사, 232명의 시장·구청장·군수, 690명의 광역의회 의원, 3천490명의 기초의원, 그리고 새 대통령에까지, 그 자리에 누가 뽑힐 것인가에 온통 쏠릴 것이다.
처음으로 대선과 지선(地選)이 한 해에 몰렸으니 어딜가나 '자리' 얘기로 날이 새고 질 것이다.
그 뿐인가. 5년만의 정권교체에 따라 국무총리에서 정부투자기관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요직이 보따리를 싸고 또 새 인물이 들어 앉을 것이다. 이 중 새 대통령이 직접 낙점하는 자리만도 300개가 넘을 것이란 얘기다. 각급 민선단체장 또한 당선 즉시 인사작업부터 서두를 터이니, 아닌 말로 시골 면서기까지 한바탕 인사바람에 술렁일 것이다.
◈그칠줄 모르는 비리 대행진
그같은 선거와 인사의 계절을 내다보면서, 정초부터 갖는 기대와 우려는 여느 때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우선은 이토록 괴롭고 고달픈 나날들을 확 몰아 낼, 그런 감동의 연출을 고대하는 절박한 심정이다. 지나간 선거마다 되풀이한 오판으로, 그 한순간의 실수로 덮어 쓴 대가가 너무도 혹독했기 때문이다.
일신의 영달에만 눈이 벌건 정치꾼들 밑에서 보낸 세월이 원통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뀌어도 검찰청사의 포토라인을 통과하는 비리 대행진이 끝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나라를 운영할 줄 아는 이, 제대로 지방자치를 꽃피울 줄 아는 이, 제대로 민(民)을 바라보는 이, 그런 인물을 대망(待望)하는 것이다.
지금 정권 또한 공업(功業)은 온데 간데 없고 실정만 크게 비치는 것도 다 인사 때문이다. 사람을 잘못 쓴 탓이다. 이른바 주체세력이라는 부류들은 정말 끊임없이 정권의 도덕성과 관리능력에 먹칠을 했다. 현 정권 최대 과제인 구조개혁도 수많은 파행인사로 평가에서 멀어져 버렸다.
문민정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주체세력의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조롱거리로 끝난 것처럼. 이제 임기 막바지에 몰려서 비선라인 차단, 사전검증절차 강화, 탕평인사 따위의 인사시스템 개혁을 외쳐대고 있지만 새겨 듣는 이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전에도 '이 정권에서는 지연, 학연, 배경, 금력이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며 오로지 실력과 공로만이 평가를 받을 것이다'고 수없이 되뇌었으니까. 문민정부가 '인사가 만사'라고 흰소리를 쳤듯이.
그렇다면 다가올 선거에서는 단호해야겠다. 새삼스레 공직자의 덕목을 열거할 것도 없지만 최소한 사이비(似而非)와 무지(無知)만큼은 경계하자는 심정적 합의가 국민의 힘을 받았으면 좋겠다.
◈'우리주의'치우친 파행 인사탓
사이비의 속성은 과대포장이다. 말이 번지르하고 쇼에 능하기 마련이다. 공(公)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사(私)에 더 집착한다. 얼렁뚱땅 상식과 원칙을 뭉개고 본(本)과 말(末)을 뒤집는다. 뒤틀린 우리주의(Weness)에 빠져 속좁은 인사파일을 버리지 못한다. 자리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마침내는 전문성과 효율성을 밀쳐내기 일쑤다. 그런 사이비들이 국민을 골병들게 하고 우리사회를 3류로 만들고 있다.
무지는 사리분별에 밝지 않다. 흔히 오만과 독선에 사로잡혀 있다. 그걸 소신이라고 우겨댄다. 틈만 나면 아류를 끌어 모아 콤플렉스를 벗어나려 한다. 사이비처럼 아부에 솔깃하고 눈먼 충성경쟁에 취해 있다. 치열한 세계화 정보화 경쟁시대의 부적격이다. 오늘날 같은 지식사회에서는 마땅히 요주의 대상이다.
그런 사이비와 무지를 멀리해야 하는 게 비단 공직에서 만이겠는가. 일반 사기업이나 작은 조직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IMF를 겪으면서 살아 남은 기업과 망한 기업의 차이에는 그런 점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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