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단 ㅇ사 생산직 사원 김모(53)씨는 벌써 4개월째 웃도리 안주머니에 사표를 넣어 다니고 있다. 회사 측에 사의를 전한 것은 이미 6개월 전의 일. 받아주겠다는 말만 떨어지면 언제라도 낼 수 있도록 준비해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씨의 사표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자신이 회사를 떠나는 대신 대학 졸업 후 2년째 놀고 있는 아들(28)을 채용해 달라는 것. 앞길이 구만리 같은 아들이 '백수' 소리 들으며 기약없이 세월만 보내는 것을 보는 게 너무나 고통스러워 이같은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나가더라도 당분간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고 또 일용직, 아파트 관리원, 정 안되면 공공근로라도 할 수 있잖아요. 아들은 취직을 해야 배우자를 구해 결혼도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평범한 생산직 사원인 김씨의 작년 연봉은 4천800만원. 아들이 아버지 대신 취직을 하더라도 연봉은 2천만원 미만이다. 타산만으로 보면 어리석을 수 있는 선택이지만 최악의 취업난이 빚어낸 엄연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형편이다.
김씨의 요청을 받은 이 회사 인사담당 간부는 "아들의 취업이 오죽 절실했으면 정년을 3년 앞둔 김씨가 이런 결심을 했겠느냐"며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회사측도 김씨의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김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회사원이 한둘이 아니라는데 있다. 포항공단 내 다른 3, 4개 업체에서도 이같은 '연계 채용' 요청이 현안이 돼 있는 상태다. 선례만 생기면 같은 선택을 할 가족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회사가 빨리 허락해 주면 좋겠는데…". 한달 뒤면 설이고 그 때 만날 친척들이 아들에게 "너는 아직도 놀고 있느냐"고 물을 것이 뻔한데, 그때 아들은 또 얼마나 전전긍긍해야 할지…. 김씨는 가슴이 조마조마 하다고 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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