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과거에 입격(入格), 벼슬 길이 열리면 고생 끝, 행복 시작쯤으로 생각했었다. 조상들은 벼슬이 높아지면 일신이 존귀해짐은 물론 광에는 재물 또한 그득해지는 걸로 기대했었고 현실적으로 또 그렇게 됐다.
그래서 부귀영화(富貴榮華)야말로 우리 인생의 최대 목표가 됐고 우리의 뼈골속까지 자연스레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사상이 스며들었던 게 사실이다. 며칠 전 검찰총장 차를 에스코트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경찰측으로부터 거부당했던 대전(大田)의 해프닝도 서슬 시퍼런 관리의 끗발만 생각한 관존민비 사상에서 비롯된 게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워싱턴 레이건 공항에서 금속 탐지기에 걸려 옷을 모두 벗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항변 한마디 없이 민간 보안요원의 검색에 순순히 응한 존 딩얼(75·민주·미시간)하원의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하다.
우리로선 상상도 못할 23선(選) 의원으로 미국 하원의 원로중 원로인 딩얼 아닌가. 그런 그가 20년전 말에서 떨어져 부상했을 때 몸에 이식한 강철 고관절때문에 탐지기가 울리자 외투, 상의, 신발, 양말은 물론 바지까지 홀랑 벗기는 수모를 겪었다. 끝내 수술자국을 보이고 간신히 검색대를 통과할 때까지 묵묵히 조사에 응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관존민비에 익숙한 우리에겐 충격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공보비서의 간결 명쾌한 진상 설명이다. 우리같은 정치 풍토라면 기왕에 벌인 춤인지라 유권자를 의식해서라도 "이러 이러하게 가혹한 검색을 당했지만 의원님은 의연하게 응하셨다"는 등의 공치사가 늘어졌으련만 일절 그런 것이 없었다.
"딩얼 의원은 검색중 끝내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는 말과 "딩얼 의원이 수없이 비행기를 탔지만 내의차림으로 조사받기는 처음"이란 말이 고작이었다니 정치인의 '과대포장'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생소한 느낌마저 든다.
딩얼 의원 당사자도 모든 검색절차가 다 끝난 다음 노먼 미네타 교통장관에게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조사했는지 알아봐 달라"는 식으로 점잖게 항의, 원숙한 정치인의 모습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어찌보면 딩얼과 그 보좌관도 의연하지만 보안요원의 철저한 검색도 '인상적'이다. 수술 자국을 확인할때까지 파고드는 보안요원의 모습에서 원칙에 철저한 미국사회의 일면을 다시 한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벼슬자리가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무슨 가문의 광영이나 되고 일신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리쯤으로 착각하는 지도자들이 아직도 있다면 딩얼의 처신을 다시 한번 되씹어 볼 일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