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링(徐凌)씨가 운전하는 트럭에 올라 우리는 도석 가공소로 향한다. 시커먼 물소가 어슬렁거리는 한가로운 시골길을 한시간여 달렸을 때 길가에 제법 규모가 큰 중국 전통가마가 버티고 서있다.
입구쪽에 차를 세우자 노인 네 분이 경운기에 도석(陶石)을 가득 싣고와 내리는 중이다. 20kg은 족히 됨직한 돌들을, 대나무 멜대 양쪽에 바구니를 달아 어깨에 메고 나르는 모습이 무척 힘겨워 보인다.
600~700평 정도 되는 요장안에는 성형한 그릇과 초벌구이한 기물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요장 한켠에는 12칸짜리 전통 장작가마가 비스듬히 앉혔는데 어림잡아 10t정도의 기물을 넣고 구울 수 있을만큼 크기가 어마어마 하다. 주로 만드는 그릇들은 하급품의 백자 식기류로 석고틀을 이용한 이장(泥漿)주입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문양도 손으로 그리지 않고 전사지(轉寫紙)를 붙여 유약처리를 하고 있다. 요장에서 일하는 직공 20여명은 대부분 50대를 넘은 여성들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그릇을 만들어냈던지 손놀림이 완전 자동화된 기계같이 재빠르고 정확하다. 다시 트럭이 한적한 시골길을 20여분 더 달리자 느닷없이 커다란 성채와 같은 공장이 나타난다.
바로 청자복원의 산실로 절강성 경공업청에서 관리하던 국영 '용천도자기공장'이다. 한 때 2천300여명의 직원이 북경인민대회당에서 쓰일만큼 훌륭한 청자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개방화 물결 이후 1985년, 세 개의 민영공장과 '용천청자연구소'로 해체되고 폐허로 변해버린 공장터는 지붕이 무너지고 잡초에 묻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도석 가공소는 비포장 농로를 10여분간 더 달렸을 때 나타났다. 기대와 달리 영락없는 우리나라 옛날 물방앗간이다. 산골 시냇가에 자리잡아, 물의 낙차를 이용해 물레방아를 돌리고, 그 동력은 디딜방아로 전달되어 도석을 빻도록 만든 품이 원시 그대로의 광경을 보여준다.
근처 관리하는 사람도 없는 물레방아 6기(基)는 종일 저홀로 삐거덕 쿵덕 도석을 빻고있다. 방아 옆에 쌓아놓은 도석가루 무더기를 보니 세월없이 빻았겠구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난다. 산속 한기가 오소소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차를 돌렸다.
다시 쉬차오싱씨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심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출발하기 전 '대요지(大窯址)'를 볼 수 있도록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노력은 해보마면서 영 자신없는 표정이었다. 대요지는 중국국무원이 '전국중점문물보호구역'으로 지정, 외국인은 당국의 허가없이 갈 수 없는 지역이다.
6개월이나 걸리는 허가절차에도 된다는 보장이 없지만 방문때도 공안(公安) 2명을 대동하도록 할만큼 통제가 심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내 학계, 언론계에서는 전인미답의 고요지(古窯址)인 것이다.
'조흥청자원'을 들어서며 쉬차오싱씨의 안색을 살피니 들뜬 목소리로, '운이 잘 닿았다'면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한다. 마침 내일 아침 일본사학회에서 대요지 조사를 가는데 박물관 연구원과 동행할 수 있도록 차량까지 주선했다는 것이다. 용천에서 40km 가량 떨어진 '소매진(小梅鎭)'이란 곳에 있는 대요지는 반경 10㎢내에 64개의 옛날 청자도요지 군락이 있는 곳이다.
현재까지 중국당국은 114개의 요장을 발굴했으나 지하 수십m까지 도자기 파편층을 이뤄, 어느 시대부터 얼마나 많은 도자기를 구워냈는지 아직 완전한 윤곽을 못잡고 있다는 것이다.
차오르는 흥분을 억누르며 승용차로 한시간 가량 달려, 일본조사단이 오기도 전에 대요지에 도착했다. 마을 이름조차 대요지로 불리는 이 곳은 깊은 산속으로, 집들이 산비탈에 제비집처럼 붙어있는 전형적인 시골이다.
요장이 있던 골짜기로 걸어가는 동안 마치 공안같은 연구원과 운전기사가 어슬렁거리며 따라왔다. 가이드 김 선생은 만약 파편 한조각이라도 집어넣다 발각되면 곧바로 추방당한다면서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마을에서 고요지를 잇는 오솔길을 들어섰을 때 연구원이 길바닥을 가리킨다. 바로 남송(南宋) 청자 전성기때 구워낸 도자기를 나르기 위해 벽돌로 만든 길이다. 우마차조차 들어갈 수 없는 좁은 벽돌길 유적이 천년의 풍상을 머금고 흙사이 군데군데 드러나보인다.
일행이 산비탈에 다달았을 때 연구원은 눈앞의 밀감밭을 들어가보라고 손짓했다. 황토 밀감밭을 올라서자 발밑은 온통 사금파리가 서걱이는 소리로 요란하다. 숫제 이건 밀감밭이 아니라 사금파리 더미다. 차라리 밀감나무가 자라는 것이 신기하다.
계단식 밭의 둑은 온통 청자 사금파리와 도지미(가마속 그릇받침)로 쌓았다. 밭둑끝을 발로 힘주어 무너뜨리자 제법 넓직한 도편(陶片)에 천태만상의 문양들이 어지럽게 쏟아진다.
눈앞에 널브러진 끝도없는 도편은 이미 문양, 색상, 시대구분이 의미가 없다. 청자의 모든 색상과 문양이 한꺼번에 뒤엉켜, 아름다움을 향한 도공들의 무한한 의지만 보여줄 따름이다.
정신없이 도편들의 문양과 모양새를 탐닉하고 있을 때 김선생이 다가와 파편들의 입부분과 굽부분을 자세히 보라고 한다. 모든 그릇들에는 용천청자의 가장 큰 특징인 '자구철족(紫口鐵足-입둘레 3mm정도가 자색을 띠고 굽다리 닿는 부분도 고동의 철색을 보이는 것)'이 뚜렷하다.
김선생은 용천으로 돌아가면 오늘날의 자구철족의 용천청자를 비교하기위해 도예가 노위손(盧偉孫)씨에게로 가보자고 한다.
너무 오래 지체하면 곤란하다는 연구원의 채근에 못이겨 산비탈을 내려오니 근처 외딴집을 들어가보라며 의미있는 웃음을 짓는다. 영문도 모른 채 외딴집에 가니 놀라움에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황토를 이겨 지은 집의 벽은 자갈 대신 온통 청자조각들로 수놓여져 있다. 도편들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 마치 보석과도 같이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과연 어떤 예술가가 이렇게 아름다운 벽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것은 곧 용천청자의 결집이자, 청자예술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에, 널빤지로 이은 허름한 농가가 그 웅장한 북경의 자금성보다도 값지게 보인다.
전충진기자 cjjeon@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