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사에서 사장 광남버스 전종환씨

광남자동차 대표이사 전종환(45)씨. 버스 운전기사로 출발, 버스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사람이다. 기사 160명에 시내버스 71대. 대구시내에서 손꼽히는 규모다. 내막을 모르고 그의 명함을 받아 든 사람들은 그가 큰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수완이 좋아 성공한 사람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전씨가 큼직한 버스회사의 대표이사가 되는 과정은 사람들의 예상과 사뭇 다르다.

경영진의 비리와 적자, 체불 임금으로 허덕이던 광남자동차는 지난 해 9월 22일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언론과 시민들은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한 파업'이라고 폄하했지만 광남자동차 근로자들의 사연은 남달랐다.

이곳의 근로자들은 지난 해 12개월 중 6개월치의 월급만 받았다. 상여금은 4번이 밀렸다. 적지만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에 기대어 살던 광남자동차의 가족들은 남편의, 혹은 아버지의 출근을 막막한 얼굴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파업 20여일 만에 기존 경영진은 퇴진했고 근로자들은 종업원 주주제 형태로 광남자동차를 전격 인수했다. 체불 임금과 운행중단, 경영진 퇴진사태를 겪는 동안 40여명의 근로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전씨도 떠날 생각을 않았던 것은 아니다. 위태로운 세월을 견뎌온 그의 아내는 그가 새 직장을 갖기를 바랐다. 그러나 떠나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전씨를 비롯한 160여명의 광남자동차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은 갈곳이 없었다.

청춘을 바친 회사의 몰락을 바라보는 50대 운전 기사의 눈물은 또 어찌할 것인가. 광남자동차의 부실원인을 파헤치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전종환씨는 그렇게 대표이사가 됐다. 오래전 부친의 회사정리 뒤치다꺼리를 어깨너머로 보았던 경험이 전부였다.

막상 근로자들이 회사를 인수했지만 부채 투성이의 회사엔 운영자금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기름값도, 당장 교체해야 할 자동차 부속품도 없었다. 급기야 운전기사들은 각자의 집을 담보로 기초 운행자금 확보에 나섰다. 겨우 장만했던 집을 담보로 밀어 넣어야 했을 때 아내의 낙심하던 얼굴을 전씨는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천신만고 끝에 광남자동차는 지난해 11월 1일 정상 운행을 시작했다. 전면 운행중단 40여일 만이었다. 현재 전체 직원 160여명 중 120여명이 우리 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까 광남자동차는 직원 전체가 사장인 셈이다. 전씨는 그저 대표성을 띠고 있을 뿐이다. 서울의 진아교통에 이어 버스 노동자가 종업원 주주제 형식으로 기업을 인수한 두 번째 사례이다.

새 경영진은 부채 탕감에 총력을 쏟아 60억원이었던 총부채를 30억원으로 줄였다. 근로자들은 체불 임금 연기에 합의했고 채권자들 설득에도 성공했다. 조만간 자산 매각을 통해 부채를 20억원으로 줄일 계획이다. 어떤 이유를 갖다대더라도 버스는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 운전기사 출신 전종환 대표는 '공동 배차제'는 잘못된 제도라고 말한다. 황금 노선 시비를 없애겠다고 지난 90년 도입된 공동 배차제는 결국 기사들의 노선 숙지도를 현격하게 떨어뜨렸다. 불친절, 무정차 통과, 난폭운전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말이다.

"회사별로 6개월마다 노선을 바꿉니다. 그렇지만 기사는 일반버스, 좌석버스를 바꿔 운행하는 관행 탓에 결국 2, 3개월에 한번씩 노선이 바뀌게 됩니다. 노선을 좀 익힐만하면 옮아 다녀야하니 모를 수밖에요. 그러니 손님이 물어도 무조건 '모릅니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언제 어디쯤 차가 막히는 지도 모르니 과속도 불가피하고요".

전 대표는 버스의 서비스 개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공동 배차제라면 사원들의 사기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경영 불투명이라고 말한다. 종업원 주주제인 만큼 전 대표는 수익과 지출을 깡그리 공개하고 수익은 물론 어려움도 모든 사원이 함께 나누겠다고 말한다. 공개로 인한 여하한 피해도 감수하겠다는 각오이다.

전 대표는 무거운 짐을 진 채 2달 전 출발한 회사를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한다. 많은 시민들이 불안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광남자동차의 운전기사 출신 '사장님'들은 모두 초보사장인 셈이다. 그러나 차고지에 멈춰 서 있던 광남자동차는 거리로 달려나왔고 초보사장들은 머지 않아 베테랑이 될 것이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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