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당신 집엔 어떤 그림이 걸려있나

오랫동안 만나지 않던 친구집을 우연히 방문한 40대 화가.집 주인이 큰 사업을 하는 만큼, 80평 아파트의 널따란 거실은 물을 뿜는 분수와 화려한 대리석으로 장식돼 가난한 화가의 눈을 휘둥그렇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는 벽에 걸린 그림을 살펴보고는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시중에서 몇만원이면 살 수 있는 조잡한 풍경화들이 잔뜩 걸려 있었기 때문.

"실내장식에 수천만원을 들여놓고 고작 이런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은근히 집 자랑하길 좋아하는 친구의 수준(?)에 적이 놀라고 말았다. 화가는 용기를 내 친구에게 괜찮은 화가의 작품을 구입할 것을 권했다. "비싼 그림인지, 싼 그림인지 누가 알 턱이 있나"는 친구의 핀잔섞인 답변에 말문을 닫고 말았다고.

벽에 걸린 몇점의 그림들로 집 주인의 문화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만 경우다. 집에 걸린 그림들은 평소 눈에 띄지 않는 듯 하지만, 가족들, 특히 아이들의 정서와 창의성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고나 있는 것일까.

필자는 직업의식 때문인지 새로 문을 연 음식점이나 사무실 등에 걸려있는 그림을 습관처럼 살펴본다. 지역에서 그런대로 봐줄만한 그림을 걸고 있는 업소는 고급음식집 두어곳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개 마구잡이로 찍어내는 이발소 그림이나 유명화가들의 모작들만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게 보통이다.

몇달전 광주에 갔을 때 얘기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음식점에 남농 허건(1907~1987)의 400호 크기 소나무 그림이 한 벽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인을 불러 물어봤더니 "1억원 가까이 할걸요…"라며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 대꾸했다. 그 음식점 뿐만 아니라 다방 사무실 등 곳곳에 걸려있는 수묵화들을 보면서 "역시 예향(藝鄕)이라는 얘기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그 도시의 문화수준은 가정이나 음식점 등 외지인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곳의 그림에서 판가름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월드컵 등 국제행사를 앞둔 대구는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울 것 같다.

수준있는 그림이라도 맘만 먹는다면 큰 돈 들이지 않고 구할 수 있다. 신인작가들의 경우 호당(우편엽서 크기) 5만~10만원 안팎으로 멋진 그림을 살 수 있고, 20만, 30만원의 저가에 볼만한 작품을 파는 화랑도 몇곳 있다.올해 여유가 있다면 괜찮은 그림 한 두점을 구해 집안에 걸어보는게 어떨까.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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