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2시 아파트 현관 벨이 울리고 한 무리의 까까머리 남자 중학생들이 들어왔다. "선생님, 보고 싶었지예. 그동안 잘 지내셨어예? 한 놈도 안빼고 다 왔심더". 겨울방학을 맞아 담임 선생님 집을 방문한 학생들이었다.
대구 달서구 ㅇ중학교 이모 교사는 특별한 겨울방학을 보내고 있다. 반 학생들을 매주 한두차례씩 집으로 초대해 함께 놀며 웃는 시간을 갖는다. 방학 하던 날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친구들끼리 조를 짜서 놀러오라"고 했다. 이 교사가 줄 수 있는 것은 간단한 간식거리와 라면, 그리고 아이스크림이 전부. 나머지 먹고 싶은 음식은 학생들에게 직접 싸오라고 주문했다.
이날 함께 찾아온 학생들은 7명. 한창 먹성좋을 때라 라면 8개를 끓여먹고 돌아서자마자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 한 줄이 금세 없어졌는데도 디저트 없냐며 아우성을 쳤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아이스크림을 꺼내 하나씩 나눠주자 그제서야 "선생님, 준비 좀 하셨네요"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 교사는 배가 부르자 제멋대로 돌아다니던 학생들을 불러앉혀 윷놀이를 시작했다. "이걸 무슨 재미로 합니까?"라며 도리질을 하던 아이들도 패를 갈라 놀이를 시작하자 탄성을 지르며 점점 몰입했다. "이거 인터넷보다 재밌네요".
"담임을 맡아 일년 동안 학생들을 지도하지만 남는 것은 이름 뿐입니다. 학년 초 일대일 면담을 하지만 호구조사 하는 정도죠. 가정 방문이 없어졌으니 대신 학생들을 집으로 불러 성격도 파악하고 평소 하기 힘든 얘기도 들어보는 겁니다".
이 교사는 학년 말 생활기록부를 작성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38명을 일년 가까이 지켜봤지만 몇몇 학생을 제외하곤 특별한 인상이 없기 때문. 결국 좋은 게 좋다는 식 미사여구로 장식한 소견을 적을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벌써 겨울방학이니 제가 담임을 맡는 것은 거의 끝났다고 봐야죠. 하지만 3학년 담임 교사가 생활기록부를 보고 조금이나마 더 학생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 집으로 불렀습니다". 우연히 얘기를 듣고 취재는 했지만 이 교사는 "많은 선생님들이 하는 평범한 일일 뿐"이라며 끝내 신분 밝히기를 사양했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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