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열중 쉬어'

우리 나라 기업인에게 왜 기업을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내 맘대로 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고 한다.항간의 우스개 소리지만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장인 내가 남의 간섭없이 내 회사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업종 전환도 해보고, 게다가 종업원도 자기 입맛에 맞게 이리 저리 옮길 수 있는 인사권을 갖고 있으니 이 얼마나 짜릿한 일인가.

하다 안되면 문닫으면 그만이고…. 기업인의 의무보다는 권한에 탐닉하는 한국 기업인의 전통적 기업관을 비꼰 말이다.그런데 이 세계화 시대, 글로벌 스탠더드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옛날 얘기가 새삼스러운 것은 웬일인가.

온갖 비리로 해가 뜨고 해가 지는 별천지에 살다보니 만사를 제쳐 놓더라도 주변에 정치하는 사람 있으면 도대체 "정치하는이유가 무엇인지" 그 대답이라도 속시원히 듣고 싶어서 이다. 우리는 왜 국민의 대표인 지도층과 정치인에게 권위(權威)를주는가. 민중의 소리를 수렴하고 이를 제도화하려면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그 칼을 지금 어디에다 휘두르고있단 말인가.

위엄이 없는 권세는 위험하기 짝이 없다. 힘을 위로 쓰지 않고 아래쪽으로 쏟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성장해간다고 보았다.

의식주 등 본능적 욕구인 생존욕구, 편안하려는안정욕구, 소속과 사랑을 원하는 친화(親和)욕구, 높은 평가를 받고 싶은 자존욕구, 자기의 가능성을 실현시키고 싶은 자기실현욕구를 말한다. 당연히 올바른 권위는 낮은 욕구의 단계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지도자라면 적어도 4단계 이상의 욕구 충족을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지도층은 얼굴에 탐욕을 덕지덕지 묻힌 채 일신의 안녕을 위해서는 염치도 없다. 흙탕물에 마구뛰어든다. 4단계 이상의 욕구는 커녕 3단계인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랑의 욕구조차 있는가. 서민들보다 더한'재물의 노예들'이 아닌가. 그러니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국민들은 위험을 느낀다.

훌륭한 경영자는 자기가 모르는 분야에는 섣불리 뛰어들지 않는다. 날개가 아직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소(離巢)한 새는 그것이 독수리라 하더라도 바로 들짐승의 밥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히 위험할 때는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이 훌륭한 전략이다.

소극적 전략의 지혜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네 정치판은 온통 공격 일변도다. '벤처만이 살 길'이라며 벤처기업에는 밑빠진 독에 물붓듯 하더니만 결국은 권력의 자금 창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교육 정책·건강보험도 하루 아침에 선진화시키려다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으며 유럽의 조합주의를 본 딴 노사정위원회도아시아에서는 선도적으로 시행했으나 '절반의 성공'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그 취지는 훌륭하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일하는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더 주는' 쪽으로 대대적인복지 개혁을 단행하고 있지 않은가. 단순히 퍼주는 복지(welfare)에서 일하는 복지(workfare)로 바꾸기 위한미국 사회의 뜨거운 논쟁과 실증(實證)분석은 우리 위정자들이 뼈저리게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번 잘못 도입된 제도는 고치기가 어렵다. 폐습이 몸속에 각인(刻印)돼버리기 때문이다. 경기가 극한 상황일 때 유능한 경영인은 이윤을 높이기 보다 오히려 손실 최소화에 신경쓴다. 잘못 부풀리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극한 상황이다. 그러니 더 이상 일을 떠벌리는 것은 삼가야 한다.

배우고서도 생각이 없으면 다 부질없지만(學而不思 罔) 배움없이 생각부터 앞서면 위험하다(思而不學 殆)는 논어 위정편의 구절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국민은 위험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 국민을 상대로 한 실험은 막을 내려야한다. 개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 해도 대단한 수확이다. 그러니 이제는 너무 '도약'자세를 취하지 말고 남은 기간 '열중 쉬어'하면서 국민의 목소리를 반추하는것도 훌륭한 정책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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