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영락물(零落物)의 시대

김기덕 감독의 영화 '수취인불명'을 보셨는지? 이 영화는 재작년 베니스영화제에 초청받아 찬사를 받았던 작품.

1970년대 미군기지촌을 중심으로 양동근이 분한 혼혈아 창국, 아들 창국이에게 '튀기'라고 했다가 얻어맞는 양공주인 그의 어머니, 창국의 엄마와 애인관계이자 김기덕 감독 영화에 단골 출연하는 조재현이 분한 개장수, 어릴 적 오빠가 쏜 장난감 총에 맞아 한쪽 눈을 잃어버린 은옥 등의 이야기를 전달해준다.

필자가 영화비평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김기덕의 영화가 서구에서 그토록 찬사를 받는 것을 두고 좋아할 필요는 없다.그것은 그저 한국인이 세계사에서 당한 고통을 서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럴 뿐이다. 그리고 김기덕이 엽기영화의 선구자라고 일컬어질 때 그 '엽기'라는 것 또한 두 눈을 아무리 치뜨고 상상해보려고 해도 머리 속에도대체 어떤 상이 잡히지 않는 상황을 가리킬 뿐이다.

이 영화에서 줄거리 상으로는 창국의 엄마가 되돌아온 수취인불명의 편지를 받지만 창국의 엄마 말고도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시대로부터 수신을 거부당한 상태에서 살아간다.

수신거부란 말보다 훨씬 더 큰 막막감을 던져주는 '수취인불명'이란 영화제목 속에서 혼혈아/튀기,양공주, 개장수, 외눈박이는, 그렇지 않은 나에게는, 혹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도저히 상상이 안가는 엽기적인존재들이고 수신접촉이 금지당한 존재들이며 추한 것이고 오물처럼 더러운 것이며 이질적인 사람들이다.

하리수 현상과 '수취인불명'의 오버랩. 우리처럼 철통같은 이성애주의 사회에서 아들선호사상이 뚜렷한 세상에서 여자가 되겠다고 나선 하리수에 대해서는 수신거부가 아니라 서로들 수신하지 못해 안달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하리수가 이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하리수는 이성애주의사회에서 철저하게 이질적인 존재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쁘다는 이유로 해서 엽기적인 존재이거나 뭔가 접촉하기에, 악수 한 번 나누기에도 꺼림칙한 존재로 비쳐지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청결주의 사회다.

의학적으로 본다면 선병질의 사회다. 선병질의 인간이 자신의 신체에 이질적인 것들이 틈입하는 것을 참아낼 능력이 없는 허약한 체질 인간인 것처럼 한국사회는 더러운 것, 이질적인 것, 타자, 추한 것, 위험한 것, 악취나고 불쾌한 것을 참아내질 못하고 모조리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학교로부터 시장으로부터 밀어내고 배설해버린다.하리수현상을 보고 이제는 우리사회도 트랜스젠더를 받아들일만큼 성숙해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것은 철저한 오독이다.

우리사회가 하리수를 열렬히 환호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트랜스젠라는 이질적인 성 밑에 청결주의 혹은 이쁜이 이데올로기가 숨겨져있기 때문이지, 성의 이질성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사회로부터 수신거부당한 사람들이 대량으로 존재한다. 튀기/혼혈아, 양공주,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실업자, 노숙자, 퇴출당한 직장인, 가출 소년소녀, 장애인, 삐끼, 호로자식, 패륜아, 음지의 인간들, 왕따,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 학벌 없고 학력없는 사람들, 외국인 노동자. 이들은 모두 내 집단에, 내 패거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 피붙이, 내 민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취인불명의 편지를 평생동안 되돌려 받으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자신의 깨끗한 피만 허용하고 콧물, 침, 고름, 오줌, 똥, 땀, 정액, 비듬, 때 등의 영락물(the abject)을 한사코 신체 바깥으로 내치기만 하듯이, 우리사회는 '수취인불명'의 사람들을 언제까지 배제·배설하며 즐거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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