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여러분은 레알산맥 남쪽에 위치한 콘도리리 국립공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저의 협회가 주관하는 '알파인 스쿨'에 나흘간 참가하게 됩니다. 이 스쿨은 궁극적으로 5,000m급 2개의 설산을 오르는 것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져 있는데 여러분의 순조로운 고소적응에 꼭 필요할 내용들입니다".
'세계오지탐사' 안데스팀(단장 김춘생)의 볼리비아 현지일정을 후원하고 있는 고산가이드 하비에르 델라에체씨(42)는 향후 계획을 이렇게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도 잊지 않았다. "콘도리리는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루종일 걸어야 하는 부담감은 있지만 결코 후회없는 걸음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콘도리리는 볼리비아의 보석이니까요…".
마음씨가 좋아 큰형님 같았던 원정대장이 돌연 목소리를 높이며 등반 준비사항을 챙기기 시작한 날, 대원들은 '행복 끝 불행 시작'을 되뇌이며 콘도리리행 지프에 몸과 장비를 실었다.
차에 올라탄 지 2시간쯤 지났을까. 지프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알티플라노 고원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해발 평균 4,000m의 대평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고원은 세계최장의 안데스산맥 허리답게 광활하기 그지 없었다. 가물가물한 지평선. 달려도 달려도 한결같은 모습.
커브길을 만나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면 차가 달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창가에 비친 풍경은 그야말로 황량했다. 계절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푸른 빛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일교차가 무려 30도를 넘어서는 척박한 땅, 해발이 높아 숨쉬기조차 힘든 이곳에서도 인간문명의 끈질긴 연(緣)을 느낄 수 있었다. 먼 옛날 스페인의 정복자들에게 쫓겨 이곳으로 숨어 들어온 인디오들이 그나마 살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서 자라는, 거의 유일한 식물군인 이쵸(Icho) 덕분이라는 설명이었다.
곧추 세운 바늘잎이 성게같은 모양의 이 풀은 인디오들에게 고기와 옷감을 제공해 주는 라마와 알파카(아메리칸 낙타)의 먹이가 된다는 것이었다. 점심 무렵 지프는 콘도리리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공원은 고원의 북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차가 올라갈 수 없어 걸어가야 했다.
대원들도 복장을 새로 갖추고 트레킹에 나섰다. 들머리는 비교적 평탄한 오름길이었다. 더욱 따가워진 햇살이 부담스럽게 다가왔지만 이쵸만 듬성듬성 난 이색적인 코스를 오르는 맛에 이럭저럭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바로 고소증세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어질어질한 편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급기야 어떤 대원은 토할 것 같다고 하고 어떤 대원은 망치로 머리를 때리는 것 같다고 했다.
"후회 없는 발걸음이 될 것이라 했는데 공원은 왜 안 나타나는 거야". 서너 시간을 걸었을까. 고소증세로 걷기조차 힘든 한 대원이 불평 삼아 내뱉었다. 하지만 그 불평은 잠시 뒤 환호로 바뀌고 말았다. 매부리처럼 튀어나온 산허리를 돌아가자 공원의 전모가 거짓말처럼 나타났다.
검은빛 물결의 산중호수, 그 호수를 빙둘러 무너질 듯 솟구친 5,000m급 설산들. 황량하기 그지없는 고원의 끝에서, 도무지 이런 광경이 펼쳐지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그것도 13개의 별무리로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었다.
주봉인 콘도리리봉(5,648m)은 이름 그대로 살아 날아갈 듯 독수리 형상이 생생했고 빙하가 허리까지 흘러내린 이즈퀴에르다봉(5,532m)은 검은빛 물결을 닮아 푸른 광채를 띠고 있었다. 암봉으로 치솟은 왈로멘봉(5,463m)은 두려움의 대상 그 자체였다.
일일이 손짓하며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이 윙윙거리는 소리로 변한 것은 벌써 오래 전이었다. 고소증세로 파김치가 다 된 대원들은 몽환처럼 펼쳐진 대자연의 신비와 마주하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정신마저 아득해졌다.
글=진용성기자 ysjin@p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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