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무 세면서 치성을-강판권씨 근사 공부법 제안

인문학의 위기가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인문학의 부흥을 위한 새로운 공부론을 제안하는 책이 출간됐다. 계명대.대구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사학자 강판권 박사의 책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세기'(지성사 펴냄)는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에 있어 나무도 그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색적 지평을 연다.

그는 박달나무, 측백나무,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 열여섯 나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에 얽힌 역사와 신화를 불러내고 있다. 이른바 근사(近思)의 공부법이 그것.

중국 사서(四書)중 하나인 대학(大學)에서 논한 격물(格物)과 치지(致知) 등 '팔조목(八條目)'중 '격물치지'에 대한 해석에 따라 여러 학파가 생겨났는데 성(性)을 중요시한 주희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면 앎에 이른다'로 해석했고, 정(情)을 중요시한 왕양명은 '참다운 양지(良知)를 얻기 위해서는 물욕을 물리쳐야 한다'라고해석했다.

강 박사는 이처럼 격물치지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를 센 것이다.대학 교정과 동네 어귀에서 한 그루 한 그루 실제로 나무를 세면서 주희식으로 격물치지하고, 꿈 속에서 나무를 세면서 왕양명식으로격물치지한다는 것이다.

"나무에 깃들어 있는 사연을 더듬어가다 보면 어느덧 인류의 기나긴 정신사적 궤적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예컨대 천연기념물 제1호인 대구 도동 측백수림을 찾은 그의 단상을 살펴보자.

애초에 그가 지녔던 수림 훼손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은 논어의 '자한'편에 나오는'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라는 구절의 '송백'이 소나무와 잣나무가 아닌 측백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내 화가 고흐의 자살과 측백나무의 연관을 살피는 데로 그의 생각은 달음질치고 있다.

이같은 '근사(近思)'를 그는 인문학 부흥을 위한 새로운 공부법으로 제안하고 있다."성리학자들이 추구한 또 다른 공부는 가까이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근사'는 공부의 기본이었다.

내가 학생들에게 나무를 세게 한 것은 성리학적 공부를실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성리학적 공부는 가까운 데서 먼 곳으로,낮은 데서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그의 시도에 대한 뜻깊은 배경은 이 책 18~22쪽에 잘 요약돼 나타난다. 256쪽. 1만3천원.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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