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문 기준은 어떻게 살았는가

만일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고, 품위 있고, 질 높은 삶인가를 고민한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떠올리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소위 상류층, 상류사회는 바로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존경받을만한 상류문화를 형성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명문가 이야기'(푸른역사 펴냄)는 500년 내력의 한국의 명문가 15곳의 역사와 정신,과거와 현재를 조명한 책이다.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조용헌 교수가 전국의 명문가를 직접 돌며 그들의삶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채록했다. 각 명문가의 역사와 자녀교육법, 치부법과 더불어 명문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풍수까지 한국 명문가 15곳의 명문가가 된 이유와 그들만의 원칙을 살펴보고 있다.

명문가를 선별하는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저자가 내세운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 집 선조나 집안 사람들이'어떻게 살았느냐'는 것이다. 돈과 벼슬이 아니라 한마디로 진선미에 부합하는 삶을 대대로 이어온 집안인가에따라 명문가를 가름하고 있다.

로마를 천년간 지탱해준 힘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에서 나왔듯 '혜택받은 자들의 책임(특권계층의 솔선수범)'을 다하려고 노력한 명문가의 철학과 정신은 바로 우리나라 명문가의 공통점이다.

그 집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자료는 바로 고택(古宅)이다. 현재까지 전통 고택을 유지하려면 경제력을 갖춘 명문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 이런 고택을 유지하고 있는 집안은 역사성,도덕성, 인물 등에서 남다른 철학과 신념이 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재물과 사람,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삼불차(三不借)의 원칙을 370년간 지켜온 영양 주실 한양 조씨 호은종택은 숱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또 12대동안 만석꾼을 한 경주 교동의 최부잣집은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을다했다는 점에서 명문가에 들만하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라,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만석 이상 넘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 400년 전통의 가훈에서도 명문가의 정신을 알 수 있다.

안동 학봉종택은 원칙과 자존심을 지킨 의리가로서의 대표적인 집안이다. 수많은 의병장과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는 등 의리를 지켜온 후손들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다.

안동 의성 김씨 내앞종택은 인걸지령(人傑地靈)의 명당으로 권력의 부조리를 정면에서 고발하는 기백과 목숨을 내건 의리로 인해 선비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명문가다. 또 화원 남평 문씨 집안은 경술국치를 당한 시기에도 자녀교육에 힘을 기울여 만권당을 설립하는 등 돈이 아닌 지혜를 후손에 물려주는 명문가다.

문중문고인 '인수문고'는 8천500책(2만권 분량)을 수장, 민간으로서는 고서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 전국의 문인, 달사들이 이곳에 찾아와 책을 열람하고 학문을 논한 문화공간이기도 했다.

이밖에 광주 기세훈 고택, 거창 동계고택, 남원 죽산 박씨 몽심재, 해남 윤선도 고택, 진도 양천 허씨 운림산방,예산 추사고택, 강릉 선교장 등은 나름의 원칙과 지조로 명문가의 이름을 빛낸 집안이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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