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산층이 사라진다

외환위기 사태 이후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 전반에 빈부 격차가 심화돼 중간층이 사라지는 대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업종간에는 물론이고 동업종에서도 업체간에,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서도 일류와 삼류의 구별이 생겨났다. 그로 인한 위화감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포항공단 한 업체 이모(52) 부장은 지난 12월 한달 동안 회사로부터 1천만원 가량을 받았다. 월급과 정기상여금 외에 수백%의 성과급이 나왔기 때문.

그러나 인근 업체 김모(48) 부장이 같은달 받은 것은 월급 210만원이 고작이었다. 성과급은 고사하고 상여금조차 체불됐던 것. 꼭 일년 전 12월 두 사람의 수령액 격차는 100만원 남짓밖에 안됐으나 그 사이 800만원 정도로 벌어졌다.

입사 동기이지만 포항 모 회사 박모(41) 과장과 이모(40) 과장의 연말정산서에 찍혀 나온 연봉 총액은 400만원 가량이나 차가 났다. 능력별 차등연봉제 때문으로, 차장 승진 때쯤이면 이들 사이에 2년 정도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뒤처진 이 과장은 출근에 점점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

정기 세일 행사를 하고 있는 포항의 한 백화점 유명 의류점 김모(48.여) 주인의 하루 매출액은 1천만원을 넘는 날이 많다. 20만∼50만원대 티셔츠나 점퍼가 최근의 인기상품.

그러나 포항 중앙상가에서 옷집을 하는 한모(36.여)씨의 매출은 장사가 잘 되는 날이래야 30만원 남짓하다. 3만∼4만원짜리 바지 한벌 못파는 날도 적잖다. 두둑한 성과급까지 받는 사람들은 소비에서도 고급화 대형화 징후를 보이며 백화점을 찾는 반면, 재래시장 고객층인 중하위 소득 계층에선 기본적인 소비마저 줄이기 때문이다.

음식점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 포항에서 손님이 많다는 말을 듣는 식당은 딱 두 부류로 좁혀졌다. 한끼 식사비가 3만원을 넘는 대도.상대.대잠동 일대 고급 식당 및 해변 레스토랑과, 2천500원이면 되는 오천.연일.흥해읍 일대의 일부 분식점이 그것.

반면 한끼 5천∼7천원 하는 정식집은 장사가 안돼 휴폐업과 신장개업을 되풀이하고 있다. 작년 이후 두번이나 신장개업이 반복됐던 죽도동 한 식당 주인 김모(44.여)씨는 "어떤 손님은 더 비싼 걸 하라 하고 다른 쪽에선 값을 더 낮추라 해서 갈피를 못잡겠다"고 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부에서는 아르헨티나 상황을 떠올리기까지 한다. 나라가 부도 났는데도 부유층은 영 다른 세계에 사는 듯 호화생활을 계속하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

포항상의 김석향 기획실장은 "그런 양극화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 지금이지만, 마침 올해는 양대 선거까지 앞둬 표만 의식한 포퓰리즘.페론주의가 판 칠 가능성이 높다"며, "중간층 두텁게 하기 노력이 기업이나 정부 모두에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포항.박정출기자 jc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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