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모 정당 대변인이 '국어를 지키고 살려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막말 제조창'으로만 여겨지던 대변인들의 평소 논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뚱딴지 같은 제목이라 황당하기까지 했다.
논평의 요지는 "우리 국민의 국어사용 능력이 갈수록 떨어져 성인의 평균 점수가 30점에도 미달한다는 발표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어 "작금의 국어 황폐화에 정치권의 절제되지 않은 언사도 나쁜 작용을 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 몹시 조심스럽다"면서 "사실과 관계없는 무책임한 주장, 국민의 심성마저 거칠게 만들 난폭한 언동에 대한 정치인들, 특히 대변인들의 자계(自戒)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반성의 말도 덧붙였다.
오늘날 우리 정치권의 말싸움은 정치수준에 비례하듯 저질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최근 야당 모임에서 있었던 모 당직자의 여권 비난 발언은 험담의 도를 넘어 언어의 유희라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다.
◈정치권의 말싸움 저질의 극치
이 당직자는 "현 정권은 단군이래 가장 썩은 정권이자 호남향우회 정권"이라며 "세간에는 총체적 부패 공화국이라는 뜻의 ROTC(republic of total corruption)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주장했다.
또 "윤태식 게이트는 권력자와 살인자의 만남", "대선에서 세번 떨어졌으면 가산을 탕진했거나 빚더미에 있어야 하는데 지난 대선에서 당선된 뒤 일산의 큰 집으로 조지 소로스를 초청해 풀코스로 만찬대접을 했다"고 독설을 이어갔다.
이에 뒤질세라 여당도 툭하면 야당 총재는 물론 가족문제를 들먹이며 인신공격을 해대고 있다.
얼마전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데드 마스크(죽은 얼굴) 등의 험담을 한 것을 후회한다"고 한 말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교언영색과 감언이설만 난무
위정자들의 막말, 식언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각종 게이트에 연루된 고위 인사들의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는 대통령의 처조카, "일면식도 없다"며 거짓말을 하다 구속된 공직자들마저 국민을 속이고 있다.흔히 혀는 칼에 비유된다.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사람을 상하게 할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만다는 의미다. 탈무드에서는 '말이 당신의 입안에 있는 한은, 당신은 말의 주인이지만 말이 입밖에 나가버린 후에는 그 말의 노예가 될는지도 모른다'고 가르치고 있다.
바야흐로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정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선거철이면 으레 말의 성찬이 홍수를 이룬다. 요즘 한창 진행중인 각 방송사들의 대선 예비주자 초청 TV토론회가 그 전초전이 되고 있다. 세련된 화술, 막힘없는 논리 전개 등 모두들 이른바 용(龍)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호변객(好辯客)들이다. 반면 교언영색(巧言令色)과 궤변에서도 누구 하나 뒤지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유머와 지혜가 담긴 말 기대
그러나 지금은 약과(藥果)다. 본격전인 선거전이 전개되면 얼마나 많은 감언이설(甘言利說)과 언어폭력에 시달려야 할 지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물론 정치인은 필요할 때는 분명하게 자기 주장을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말 한마디는 필부(匹夫)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을 만큼 영향력과 파급효과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절제된 언어와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지혜, 청량제와 같은 유머와 위트로 국민들의 가슴속을 파고드는 그런 정치인이 정치의 해에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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