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이버 공간 운영실태

인터넷 활용이 보편화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 청소년들이 보내는 시간이 급격히 늘고 있다. 인터넷 중독증이란 말이 그다지 별스럽게 들리지 않을 정도. 그러나 청소년들의 눈길을 끌만한 대책은 이렇다하게 보이지 않는다.

특히 벤처기업을 비롯한 사기업들의 청소년 공략이 갈수록 세련되고 교묘해지는데 반해 학교나 교육청 등 공교육 차원의 '손님끌기'는 몇년전 모양에서 제자리걸음하고 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학교나 학급 홈페이지 운영도 구태를 벗지 못해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상황=대구시 교육청은 최근 '학교 홈페이지 구축 및 활용 현황'이란 보도자료를 냈다. 초.중.고 학교별 홈페이지 구축 현황과 학급 홈페이지 운영 상황을 담은 것.

정보화 분야에서 전국 선두권을 달리는 대구시 교육청이라 학교 홈페이지 구축은 이미 100%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학급 홈페이지도 운영 비율이 41.2%. 그리 길지 않은 교육 정보화 기간에 비하면 놀라운 결과다.

그러나 홈페이지들을 속속들이 뜯어보면 아직은 건물만 덩그런 빈 집이 대부분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정확히 말한다면 구식 단독주택 같은 느낌을 준다. 학교소개-교직원 현황-공지사항-학교 활동-학습 자료-동아리 소개-게시판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

대부분의 방들은 만든 초기에 올린 자료 한두개가 있을 뿐 업데이트는 가뭄에 콩나듯 한다. 자료도 텍스트나 사진 등 구닥다리 일색이 대부분. 그나마 담당 교사와 학생들이 부지런히 자료를 올리는 학교도 눈에 띄지만 시험기간이나 방학기간 등에는 속수무책인 모습이다.

심지어 경북도 교육청에서 우수 홈페이지라고 소개하는 초.중.고 홈페이지도 상업적인 입장에서 보면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학급 홈페이지는 태반이 이름 뿐이다. 대구의 초등학교 학급 홈페이지 구축 비율이 59.8%라고 하지만 학생들이 즐겨찾는다는 인상을 주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부지런한 교사들은 하루 한두건씩 글이나 자료를 올리고 있지만 홈페이지를 통해 학급 운영이 활기를 띠기에는 요원한 모습이다.

▨청소년들의 현 주소=주요 거주지는 대규모 커뮤니티나 사이버카페, 채팅 사이트 등. 학교나 학급 홈페이지가 구식 단독주택이라면 여기는 아파트단지나 중심가에 잘 지어진 복합 빌딩이다.

취미나 관심이 비슷한 또래들이 언제나 와글와글거린다. 이성 친구에 대한 고민부터 선생님이나 부모님에 대한 불만, 누구누구의 생일잔치 같은 시시콜콜한 잡담 등 별의별 얘기가 오간다. 이따금씩 모여서 얼굴을 확인하는 '팅'(모임)도 한다.

주거지에서 나서면 오락 공간들이 즐비하다. 게임 사이트 서너개 가입은 필수. 회원이 몇백만명인 게임 사이트가 국내에도 여럿 있다. 이곳저곳 들러 즐기는 게임을 한다. 전화로 약속한 친구들과 게임 사이트에서 만나 함께 게임하며 채팅도 즐긴다.

한두 시간 보낸 뒤 좋아하는 연예인의 홈페이지에 잠깐 들렀다가 음악이나 영화 사이트도 흘깃 들러보고는 친구들에게 메일을 쓴다. 아바타나 플래시 엽서 등은 기본. 누가 더 멋있게 편지를 보내는지 경쟁하듯 메일 만들기에 보내는 시간도 적잖다.

대충 둘러본 청소년들의 사이버 공간 활용 양태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나 학급 홈페이지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아예 무리일지도 모른다. 사이버 공간은 강압적으로 찾아 활용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니 지금의 모양내기 정도로 만족하는 게 공교육의 현 여건에서 현실적이라고 말하는 교사들도 있다.

▨활성화 방법은 없나=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은 공교육에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공교육의 위기는 사이버 공간에서 가속화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학원에서 배우는 것은 물론 이제는 집에 앉아 인터넷에서도 손쉽게 배울 수 있으니 학교 교육의 입지가 그만큼 좁아진다는 것.

그러나 학교나 학급 홈페이지를 살려 청소년들을 끌어들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 교사들의 개인 홈페이지. 대구에만 수십명의 교사들이 상당한 수준의 홈페이지를 충실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학생들의 방문도 적잖아 학교 활동과 연계시키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능인고 이상균 교사의 홈페이지를 살펴보자. 그의 홈페이지에는 국어과와 관련된 각종 학습자료가 다양하게 올라와 있는 것은 물론 진학상담, 논술.면접, 학교생활 등 학생들에게 도움 되는 정보가 가득하다. 학생들과의 의견 교환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분야별 자료실마다 간단한 자바 게임을 넣어 머리를 식힐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교사들의 이같은 개인적 능력들을 학교나 학급 홈페이지 활성화로 전환시키면 상당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학교마다 전산 요원을 채용하거나 외부 업체에 홈페이지 관리 등을 맡겨 교사들의 실무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자료를 만드는 교사들에게 제작과 관리까지 맡긴다면 그 짐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이 교사 역시 "학교나 학급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교사들에게는 금전적인 보상보다는 인력 지원이 한층 절실하다"고 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청이나 학교 간부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학교나 학급 홈페이지를 단순히 방문객들에게 소개하고 알리는 수준이 아니라 학생들의 활용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선 학교 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

교사들 역시 단순히 교과서 내용을 웹 문서로 바꾸는 정도로 모든 것을 갖췄다고 여기는 자세를 버리고 학생들과 인터넷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과제를 주고 힌트를 주고 검토해 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 인터넷 교육업체 관계자는 "쌍방향성은 인터넷 뿐만 아니라 교육에서도 기본적인 부분"이라면서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하고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학교나 학급 홈페이지를 사설 업체 못지 않게 활성화할 수 있다"고 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