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호는 다관을 만드는 도토(陶土) 자체가 밀도가 조밀하면서도 투과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최상의 차맛을 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자사호는 하루종일 찻물을 따라 놓아도 찻물 위에 막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사호를 만드는 도예가뿐만 아니라 이싱(宜興) 사람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자사흙의 우수성을 말했다. 물론 아무런 유약처리도 하지 않고 1120~1180℃ 정도의 온도에서 구워지는 자사호가 다양한 색상을 내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고 흙의 결정구조로 인해 다관이 화학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 신비스럽다.
자사호 맥을 옳게 잡으려면 결국 자사광(紫砂鑛)을 가볼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현지인을 통해 자사광 안내를 부탁했다. 자사광은 생각과 달리 시가지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딩산(丁山)에서 이싱 시내로 가는 8차로도로 길목 좌우에 나즈막한 청룡산과 황룡산이 자리잡고 있는데 그 언덕과도 같은 두 산이 이싱 자사호의 모태였다.
청룡산은 현재 도석 광맥이 거의 끊겨 폐광된 상태며 지금은 주로 황룡산에서 자사석을 캐내고 있었다. 도석을 실은 트럭과 경운기들이 먼지를 풀풀 날리는 주택가를 돌아 황룡산에 도착했을 때 안전요원이 다급하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다.
"곧 폭약을 터뜨리니 광산으로 접근하지말라는 경곱니다. 본디 이 황룡산의 도석광은 수직으로 지하 50여m 뚫고 내려가 다시 사방으로 거미줄처럼 200여m씩 뚫고 들어가 도석을 캐냈습니다.
그러나 10여년전 광산 붕괴사고가 나고나서 지하갱도를 폐쇄하고 지금은 노천광에서 폭약을 터뜨려 채굴하고 있습니다". 발파를 피해 산기슭으로 돌아가자 지하갱도로 통하는 철로가 녹슨 채 누워있고 갱도 입구는 철문을 달아 굳게 걸어잠가 놓았다.
수차례 폭약이 터지고 흙먼지가 가라앉은 후 채굴 현장을 다가갔다. 인부들은 괭이, 지렛대 등으로 바윗덩어리들을 파내 트럭에 싣고 있었다. 편마암처럼 층을 이룬 도석을 집어들고 손끝으로 힘을 주니 약간씩 부스러지는 게 무척 무른 느낌이다. 한켠에는 대나무로 엮은 삼태기에 다소 진한 자줏색과 붉은색을 띠는 주먹만한 돌들이 담겨있다.
"바로 이 돌들이 자사호를 만드는 도석입니다. 몇 트럭의 돌들 가운데 자사호 도석은 한 경운기 나올까 말까죠. 나머지는 모두 화분이나 단지를 만듭니다.물론 그중에서도 다소 질이 괜찮은 돌은 하품의 자사호를 만드는데 쓰이기도 하지만…". "이싱에서도 자사흙은 무척 귀한 흙이로군요.
무엇보다 이 많은 돌무더기서 야구공 만큼씩 박혀있는 자사호 도석을 골라내는 기술이 놀랍습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40~50년 이 일만 했으니 한눈에 도석의 질을 감별하고 골라내죠. 그렇지만 지금은 광맥이 줄어 골라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사흙도 앞으로 50년 정도 지나면 고갈되어 이싱 자사도 끝날 것이라고들 합니다. 때문에 지금도 값이 크게 오르고 있지요. 형편이 넉넉한 도예가들은 이미 몇십년은 쓸 수 있는 도석을 저장하기도 하고요". 다관 하나에 몇 백만원씩 하는 자사호는 단지 작가의 이름값이나 이싱 사람들의 자존심 값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도석 가공공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도석 가공공장은 광산에서 가까운 주택가 가정집이다. 현지인의 설명으로 많은 유명작가들이 이 곳의 흙을 가져다 쓴다고 했다. 마당에는 각각 색상과 크기가 다른 돌들이 비닐 위에 널려 있었다.
땅속에 묻혀있던 돌들을 1, 2년 햇볕에 널어두면 풍화작용이 일어나 잘게 부숴진다. 돌들이 구슬알 정도로 잘게 부숴지면 전기모터가 달린 맷돌에 넣고 가루로 갈아낸 다음 체로 거른다. 고운 가루가 된 자사흙은 반죽으로 만들어 다시 지하에 묻어 숙성시킨다. 자사흙은 오래 숙성될수록 품질이 좋아지는데, 옛날에는 아들이 쓸 흙을 아버지가 장만해두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자사흙은 가격이 만만치 않겠는데요".
"자사흙은 상상외로 비쌉니다. 마당에 널려있는 흙들은 대부분 상품에 속하는데 자줏빛을 띤 것이 붉은빛보다 품질이 앞섭니다. 자줏빛 흙은 나중에 구워졌을 때 색상이 진청색에 가까우며 붉은 빛 흙은 흙에 따라 진적에서 연적의 색상을 내지요". 도석 가공공장 주인은 일일이 도석을 비교해가며 일러준 다음 포대가 차곡차곡 쌓인 곳으로 데려가 자그마한 비닐 포대에서 무지개 빛이 나는 돌덩이 하나를 꺼내 보인다.
"이것이 현재 이싱 자사 도석 가운데 가장 비싼 값이 나가는 것입니다.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데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격은 수비(도토를 물로 이겨 반죽한 상태)한 것이 보통 kg당 200위안(元, 한화 약 3만2천원)정도 하죠". 4홉들이 맥주 한 병이 슈퍼에서 2위안 하니 자사흙은 가히 금값과 같다는 말이 실감 났다. 또 이런 흙으로 빚어내는 자사호에 대한 이싱 사람들의 자부심도 짐작할 만했다.
비슷한 느낌은 '백룡호(百龍壺)'란 다관에서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이싱을 취재하면서 수차례 백룡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가이드 김 선생에게 물었다. 백룡호는 이싱 자사호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만든 야심작인데, 한 번 볼 수 있도록 주선해보겠다고 했다.
몇 군데 연락을 취한 김 선생은 한시간 후 도예가 허팅자오(何挺招)씨 전시장에서 발표회를 갖는데 그 곳으로 가면 백룡호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점포를 겸하고 있는 허씨의 전시장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한참을 기다리자 밖이 시끌벅적하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백룡호 제작에 참여한 작가들과 운영위원들, 그리고 톈진(天津)TV 스태프들이 안으로 들어오니 전시 실은 더 이상 발디딜 틈이 없다.
허씨의 아들 허지엔(何健)씨가 일행에게 몇마디 설명한 후 곧바로 발표에 들어갔다. 제작동기, 참가자 등에 대한 기자의 질문이 오갔다. 아무리 이싱 자사호를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지만 하나의 작품으로 끝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해서, 한번의 작품으로 끝나는지 앞으로 다른 계획이 있는 지 물었다.
제작진이 내년 다시 다섯 세트를 만들고 본격 상품화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답변이 끝나자 톈진TV는 백룡호 취재는 뒷전이고 오히려 이싱 도자기 취재를 온 외국 기자에게 더 관심을 보여 졸지에 백룡호를 평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전충진기자 cjje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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