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눔과 사랑 그리고 희망 자원봉사(9)-야학 이어가는 청년들

사람 다니기에도 비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 내당교회 인근. 교회 옆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가면 판자를 이리 저리 대어 지은 허름한 집이 나온다. 모양새는 보잘 것 없으나 이곳이 바로 배움의 소중한 싹이 자라고 있는 삼일야학(053-654-1953)의 터전이다.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작은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23일 오후 7시. 비꺽거리는 좁은 의자에 앉아 수업에 열중인 학생들의 면학 열기가 겨울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만학의 꿈이 영글어 가는 소중한 공간 삼일야학에 몸담고 있는 학생은 20여명. 가정불화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10대에서부터 주린 배 채우기에 급급한 시절을 보내느라 배움의 문턱을 넘지 못했던 60대까지 다양하다.

아픈 기억을 뒤로 한 채 삼일야학의 품으로 찾아든 이들에게 배움을 전하는 교사는 현재 18명. 계명대와 경북대 재학생인 이들 교사들과 학생들은 사제의 연을 맺고 한마음으로 배움의 소중함을 실천해 나가고 있다.

오는 5월20일 개교 30주년을 맞는 삼일야학은 한 때 학생 70여명, 교사 25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지만 학력 수준이 높아지고 시대 상황이 변함에 따라 교사, 학생들이 많이 줄어 들었다. 교사가 4명에 불과해 문을 닫을 뻔한 위기도 있었다.

"세상이 변했지만 여전히 제도권 교육에 편입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외면한 채 야학을 폐쇄할 수 없었습니다" 김혁(29) 교무 교사는 배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를 악물고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소외된 사람들이 찾아드는 야학이 점점 사회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환기조차 되지 않는 곳에서 선풍기 한대에 의존, 여름을 보내야하는 것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고통이다. 시린 손을 달래며 수업해야 하는 겨울도 교사, 학생 모두에게 넘기기 힘든 계절이다.

2년여전에는 훔쳐 갈 것이라곤 낡은 책상과 헌 책 뿐인 이곳에 도둑이 들어 어렵게 장만한 컴퓨터의 주요 부품을 뜯어가는 바람에 그 흔한 컴퓨터 한대 없는 실정이다. 정부에서 지원받는 연 280만원이 수입의 전부여서 교사들이 부족한 야학 운영비까지 마련해야 하는 현실에서 교육환경 개선은 공허한 꿈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정작 교사들이 힘들어 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야학 교사라면 소위 운동권 학생으로 분류하고 자기 앞가름도 못하는 학생들이 누구를 가르치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접할 때 교사들의 의욕은 땅에 떨어진다.

"어렵게 공부한 학생들이 검정고시에 합격 했을 때 느끼는 기쁨이 교사 생활을 유지하는 원동력입니다" 이구동성으로 학생들로부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힘을 얻고 있다는 삼일야학 교사들은 새해를 맞아 새 보금자리 마련이라는 큰 계획을 세웠다.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교육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기 때문. "어려운 줄 알면서도 계획조차 없으면 안되겠다 싶어 이전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교사들의 말에서 야학 전통을 지켜 내려는 젊은이들의 건강한 의지와 사회의 무관심이 교차하고 있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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