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묵으로 보는 겨울풍경

몇차례 허탕을 치고 헐티재를 넘었다.산을 내려오다 오른편에 그나마 볼만한 대나무 숲. 조그만 오솔길에 푸르름이 가득하고 이리저리 흩날리는 대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네. 그 사이 커다란 바위 두개.

굳건한 바위와 하늘로 뻗은 대나무, 너무도 절묘한 배합이 아닌가. 스케치를 하던 문인화가 김진규씨는 "그림 구도로는 괜찮은 곳"이라 입마르게 칭찬한다.

반가운 마음에 대숲 사이를 몇차례 걸어본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코트의 옷깃만 세우게 할 뿐, 별다른 감흥은 솟지 않는다.

누가 고절(孤節)이니 겨울의 정취라 했나. 이젠 흘러간 옛노래일뿐, 와닿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추위에 손도 얼고 마음도 얼어붙었다. 그옛날 시인묵객들의 감성이 왜 그리 부러울까.

그래도 대나무의 떨림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대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마음까지 스산해진다. 겨울밤 대나무 숲을 지나며 무서웠다거나 무당집 앞 대나무를 보며 놀랐던 얘기가 떠오른다. 대나무는 절개(節槪)와 축귀(逐鬼)의 이중적인 상징이다.

한국문화의 상징물로 남아 있을 뿐, 우리 주위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는 나무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대숲은 인간의 무관심에 점차 사라지고 남은 곳조차 부서지고 황폐해 졌다. 파괴하고 부수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지만, 저 깊은 가슴속 절개마저 떼어낸다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절개와는 거리 먼 세상이기에 대나무는 그렇게 외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지 모른다.

글:박병선기자

그림:죽강 김진규(문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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