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진학하면 정치외교학을 공부해서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라는 이집트의 고등학교 2학년생 데릭(16세)은 주변사람 모두가 '우등생'이라고 치켜세우는 학생이다. 외교관을 꿈꾸는 이유를 묻자 "부모님이 외교관이고 외국을 많이 다니고 싶다"면서 미리 준비라도 한듯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자신의 이름을 쟈스민이라고 밝힌 같은 반 여학생은 "영어교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 두 학생들의 '꿈'은 다른 학생들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의사나 기술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의사라는 직업이 동서를 막론하고 인기있는 직업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지만 '기술자'라니? 우리나라 학생들이 꿈꾸는 진로와는 엄청난 거리가 있는 것 같다.
필자를 안내하던 영어과 주임교사 아흐멧 갈라르(51세)씨에게 확인해봤다. 그는 "사실"이라고 했다. "가장 우수한 학생들부터 의과대학, 공과대학, 사관학교등의 순서로 진학한다"는 얘기였다.
고3학생들의 교실로 들어가봤다. 남녀학생 25명 정도가 공부하고 있었지만 학생들의 덩치가 워낙 커서인지 교실공간이 좁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실문이 열리면서 먼 발치에서만 보아왔던 동양인을 가까이서 대한다는 흥분감때문이었는지 학생들 모두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면서 필자를 맞아주었다.
'히잡'으로 머리를 가린 여학생들만 없었다면 유럽의 학교교실로 착각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분위기였다. 중고등학교에서 여학생들과 공부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필자의 눈에는 이슬람국가인 이집트에서 남녀고등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장난기가 많은 한 학생은 어느새 숨겨놓았던 선글라스를 끼고 어른흉내를 내면서 다른 학생들을 웃겼다.
4시간만 자고 공부한다는 한 학생의 얘기를 들으면서 이집트도 '입시지옥'의 나라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7천만명이나 되는 인구에 한정된 대학교 입학정원은 학생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학교의 여자교장인 하비바 살람은 "학교교육의 목표는 인성교육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더 높은 대학합격률을 달성하는 것이 '입시지옥'의 현실에서 실질적인 목표가 돼버렸다"고 한탄했다.
어쨌든 휴식종이 울린 후 2천여 명의 학생들이 한꺼번에 교실을 박차고 뛰어나와 서로 한 덩어리로 엉겨붙어 장난치는 모습, 복도와 운동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모습, 수업종이 치자마자 모두 사라지고 침묵만 남는 운동장은 동서를 넘어 학교만이 간직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 학교(디지라 외국어학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95%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사립 명문'이다. 모든 교과수업은 영어로 진행되는 것이 기본이어서 어릴 때부터 학생들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된다. 컴퓨터실은 필자도 놀랄정도였다. 이집트의 공립학교와는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시설면에서 앞서있었다. 모든 과학과목을 영상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효과만점이라는 얘기였다. 반면 공립학교에 다니는 대부분의 가난한 학생들은 책이나 학용품조차 제대로 구입할 형편이 못된다.
"사립 외국어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1년에 미화 5천달러라는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갈라르 선생은 말했다. 한 달에 거진 400달러 이상을 납부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집트에서 웬만한 봉급쟁이는 한 달 월급을 다 털어넣고도 모자라는 액수다. 더군다나 사립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방과 후 과외수업을 받기 위해 사설학원으로 달려간다. 물론 이 학교의 대다수 학생들은 부유한 가정출신이지만 적지않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비싼 등록금을 충당하기 위해 하루에 두 군데의 직장에서 일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필자가 이집트의 학교에서 궁금했던 것은 '10대들의 방황'이었다. 서구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범죄율을 자랑하고 있는 이집트에서는 '청소년범죄'란 말을 듣기 힘들 정도이다.
총기난사, 폭력, 마약 등의 문제로 언제나 공포가 지배하는 미국학교들, '왕따'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학교내 폭력이 판을 치는 한국의 학교들과는 달리 이집트의 학교 대부분은 이런 문제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개교 이래 단 한 명의 학생도 퇴학당한 사례가 없다는 사실이 우리학교의 진정한 자랑"이라고 이 학교의 하비바 살람 교장은 강조했다.
하영석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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